30대인 내가 초등학생과 친구가 되는 가상의 공간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2주간 체험해보니]

이유진 기자 2021. 8. 3. 20: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운전면허 없이 차를 몰고,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삼삼오오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떤다. 코로나19 시국에 무슨 소리냐고?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 이야기다.

네이버 자회사 네이버제트가 2018년 선보인 제페토는 올해 7월 초 기준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 2억8000만건을 기록했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의 놀이터’로 불리고, 국내외 대기업이 줄줄이 입점했다고 한다. 제페토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용자의 80%가 10대로 알려진 만큼 30대인 기자 주변에서 제페토 이용자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닉네임 ‘경향맨’으로 지난 7월 제페토 세상을 2주간 직접 체험했다.

■ 어서와, 메타버스는 처음이지?

아바타가 주인공인 가상세계
현실 옮겨놓은 듯한 맵 2만개

제페토에 입장하려면 아바타가 필요하다. 플랫폼이 제시한 아바타 중 하나를 고를 수도 있고, ‘내 사진’을 토대로 만들어진 아바타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처음엔 큰 눈을 가진 아바타가 영 어색했지만, 금세 정이 들었다. 무료로 주어진 디지털 화폐 8500코인으로 정장을 샀다. 아바타를 다듬고 꾸미다보니 30분이 훌쩍 지났다.

여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처럼 제페토에도 ‘실시간 피드’가 있다. 음악에 맞춰 정해진 춤을 추는 각종 ‘챌린지’나 셀피·일상사진을 올리는 것은 같지만, 아바타가 주인공이고 가상세계가 배경이라는 것이 다르다. 팔로·팔로잉 기능을 통해 친구를 맺을 수 있으며 다양한 국적의 이용자를 만날 수도 있다.

제페토의 진가는 교실·카페·수영장·한강공원 등을 구현해낸 가상공간 맵에서 잘 드러난다. 제페토엔 약 2만개의 맵이 존재한다. BTS월드나 블랙핑크 테마파크 등 K팝 아이돌 팬들을 위한 공간도 있고, 아케이드 게임을 즐기는 게임존도 있다. 제페토 안에서 찍은 사진을 ‘피드’에 올리고, 해시태그도 자유롭게 달 수 있다.

평소 궁금했던 정치인 유세장을 방문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 이낙연 전 대표의 유세장에 들어섰다. ‘내 삶을 지켜주는 나라’라고 쓰인 전광판이 보였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원희룡 제주지사의 유세장은 비교적 차분한 느낌이었다. 벚꽃이 만개한 고궁을 콘셉트로 한 유세장 하늘엔 ‘업글희룡’이란 문구가 떠 있었다.

■ 제페토 월드에 ‘불가능’은 없다

기업 마케팅·소비 활동 활발
한정판 구찌 가방 판매하고
현대차 시승도 해볼 수 있어

마케팅을 위해 입점한 기업들 면면을 보며 제페토의 인기를 실감했다. 드라이빙 존은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을 시승하는 이용자로 붐볐고, 한정판 ‘구찌 가방’은 판매 시작과 함께 매진됐다. 디즈니부터 패션 브랜드 나이키·크리스찬 루부탱, 걸그룹 트와이스·있지, 야구단 두산베어스·KT위즈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숍이 입점해 있다. 물건 가격은 실물의 약 500분의 1 수준이다. 기자는 터치 세 번 만에 삼성전자 최신형 TV를 구입했다. 단돈 10코인(약 2.5원)이면 충분했다.

10대 이용자 엄지(닉네임)와는 ‘반모’(반말모드)를 하며 친해졌다. 초등학생이라는 정보만 알려줬을 뿐, 닉네임을 부르며 친구로 지냈다. 오후 9시, 엄지가 기자를 한강공원에 초대했다. 편의점 옆 테이블에 앉자 아바타가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공원 곳곳엔 따릉이도 설치됐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카페로 이동했다. 지난 2월부터 제페토를 시작한 엄지는 “예쁘게 옷 입고 멋진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좋고, 사람들이랑 편하게 만나고 헤어질 수 있어서 좋다”며 “제페토에서 옷을 만들어 팔 것”이라고 했다. 제페토에서는 이용자가 아이템을 만들어 팔 수 있고, 이를 통해 얻은 가상통화 ‘젬’을 현금으로 환전할 수도 있다.

■ 결제 유도 등 사각지대 우려

익명 활동 범죄 위험에 노출
지나친 상업화 우려 목소리

플랫폼에 익숙해지자 규제 사각지대가 눈에 띄었다. 실존 인물을 희화화해 아바타를 꾸미거나, 욕설·혐오 발언을 하는 이용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미성년자인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의 위험성도 있었다. 엄지는 “연락처를 물어봐서 알려줬는데,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와 차단했다”면서 “아바타도 여자였고, 방학 얘기를 해서 친구로 여겼는데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상업화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나왔다. 가상통화 젬을 무료로 얻기 위해선 광고를 시청하거나 퀘스트를 깨야 하는데, 하루 최대 얻을 수 있는 수량이 한정돼 현금 결제를 유도한다는 지적이다. 한 이용자는 “다른 이용자들로부터 아이템 선물을 강요받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또 퀘스트 중 다수가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이나 신상정보 입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유도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제페토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성장했다.

네이버제트 관계자는 “플랫폼에서 불법적 행위를 해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운영하고 있고, 위반 시 콘텐츠 삭제 등 조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