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고난의 행군 2
[경향신문]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62년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모두가 이밥(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천리마운동을 독려하며 한 이 말은 이후 북한의 목표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호언장담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10년이 흐른 당시 북한은 비교적 순조롭게 국가를 재건하고 있었고, 체제 경쟁에서 남한을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말은 실현되기는커녕 거꾸로 되었다.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이 잇따라 붕괴하면서 북한의 경제는 흔들렸다. 무상지원과 물물교환 형태의 유상지원 등 뒷배 역할을 해온 사회주의 동맹의 부재는 북한을 고립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여기에 홍수와 냉해 등 자연재해가 수년간 겹치고 이어지면서 식량난이 덮쳐 식량배급제가 무너졌다. 그 결과 김 주석이 사망한 1994년 여름부터 북한은 5년여간 ‘고난의 행군’에 들어가 수십만명이 굶어죽었다. 실제 아사자 숫자는 알 수 없는데, 수백만명에 이른다는 말도 있다.
고난의 행군은 원래 일제강점기인 1938년 겨울, 항일운동을 하던 김일성이 일본군을 피해 추위와 굶주림 속에 100일간 행군한 것을 일컫는다. 북한 인민에게는 듣기만 해도 끔찍한 말이다. 그런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미 지난 4월 노동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를 통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으로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홍수 등 자연재해에 코로나19로 국경폐쇄까지 겹칠 것을 미리 염려했을 법하다. 10년 넘게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도 북한을 옥죄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3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금년도 곡물 부족 사정이 악화하자 전시 비축미를 절량세대(곡물이 끊어진 세대)를 비롯해 기관, 기업소 근로자까지 공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북한의 식량난이 이미 시작됐다는 말이다. 그러고보면 최근 남북 통신연락선 전격 복원이 식량난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타당하다. “통신선 복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요청한 것”이라는 국정원의 보고도 예사롭지 않다. 만약 북한이 식량난을 겪고 있다면 돕는 데 주저함이 있어선 안 된다. 이때 머뭇거린다면 같은 민족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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