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반드시 탐사해야 할 인물, 버나드 쇼

박영서 2021. 8. 3.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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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극작가, 비평가, 사회주의 사상가, 연설가, 정치가였다.

사람들은 그를 불세출의 지성이라고 불렀다.

저자가 20여년 동안 쇼의 곁에서 그를 '탐사'한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극작·비평 활동, 연애와 결혼, 사회주의자로서의 활동, 94세로 사망하기까지 쇼의 인생 전체를 따라가며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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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쇼-지성의 연대기 헤스케드 피어슨 지음·김지연 옮김 / 뗀데데로 펴냄

그는 극작가, 비평가, 사회주의 사상가, 연설가, 정치가였다. 노벨상과 오스카상을 둘 다 거머쥔 유일한 인물이었다. 영국 노동당 탄생의 주역이었고 런던정경대(LSE)를 공동 설립했다. 명언을 많이 남긴 것으로도 유명했다. 당대의 천재 오스카 와일드조차 "세상에 적수가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그를 불세출의 지성이라고 불렀다. 누구일까. 바로 버나드 쇼(1856~1950)다.

이 책은 쇼의 면면을 살필 수 있는 흥미진진하고 입체적인 전기다. 저자가 20여년 동안 쇼의 곁에서 그를 '탐사'한 결과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극작·비평 활동, 연애와 결혼, 사회주의자로서의 활동, 94세로 사망하기까지 쇼의 인생 전체를 따라가며 정리했다. 쇼에 관한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평전으로 평가받는다.

쇼는 아일랜드 더불린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곡물사업을 벌였다가 망했다. 그는 10대 초반에 더블린의 부동산거래소에서 사환으로 첫 사회 경험을 한다. 하지만 신문·잡지 등에 투고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 어머니가 런던으로 가서 음악교사로 일하게 됐을 때 그도 따라갔다. 런던에서 에디슨전화사에 근무하다가 바로 그만뒀다. 이후 신문 원고, 소설 등을 쓰면서 연명했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다. 주로 영국박물관 독서실에 틀어박혀 매일 엄청난 분량의 글을 써댔다. 25살때 채식주의자가 됐다. "정신수준이 나 정도 되는 사람은 사체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26살때 사회주의자가 됐다. 이후 신문과 잡지의 시평(時評)을 담당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5년 희곡 '성녀 존'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희곡 '피그말리온'은 '마이 페어 레이디'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돼 1938년 그에게 오스카 각본상을 안겼다.

쇼는 비극적 상황에 처할 때마다 우울함보다 웃음을 택했다. 그의 해학과 풍자는 가장 큰 무기였다. 특히 그는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쇼는 평생 열린 자세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였다. 책에는 유머와 기개, 재능과 상상력을 무기 삼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는 데 온 힘을 쏟았던 쇼의 일생이 담겨있다. 책을 읽을수록 그에게 놀라게 된다. 그러니 그를 닮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역시 버나드 쇼는 오직 한 명뿐이다.

박영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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