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친환경' 장벽은 결국 中 타깃..美 무역질서 재편의 한 축"

정리=양철민 기자 2021. 8. 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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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소국경세 특별 좌담회
"韓, 예외 적용 쉽지않아..'무역규범 위반' 강하게 어필해야"
서울경제가 ‘탄소국경세 도입 관련 통상 환경 변화’라는 주제로 마련한 특별 좌담회에서 김경한(왼쪽부터) 포스코 무역통상실장,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재 기자
[서울경제]

참석자: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김경한 포스코 무역통상실장,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

“역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오는 2030년까지 지난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 위해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한편 2035년부터 유럽연합(EU) 내 신규 휘발유·디젤 차량 판매를 사실상 금지하겠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14일(현지 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정책 패키지를 공개하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환경 규제에 기반한 새로운 무역 정책 수립을 공식화했다. EU 측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 등에 2026년부터 단계적으로 탄소국경세를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산업계에서는 탄소국경세가 화학·에너지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에 주로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변수는 미국이다. 현재는 자국의 석유·철강·자동차 산업 보호 등을 이유로 친환경 무역장벽 설립에 다소 소극적이지만 대(對)중국 견제를 통해 글로벌 무역 질서를 재편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는 EU에 힘을 실으며 점진적으로 탄소국경세에 대한 주도권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친환경 정책을 골자로 한 급격한 글로벌 무역 환경 변화와 관련해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판과 함께 국내에서는 제조업 경쟁력에 기반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서울경제는 EU 등이 추진 중인 친환경 무역장벽의 의도와 이로 인한 글로벌 무역 질서 재편에 따른 우리의 대응 방안 모색 등을 위해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김경한 포스코 무역통상실장(전무),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 등과 함께 김현수 서울경제 경제부장의 사회로 특별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번 좌담회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에 맞춰 진행됐다.

통상 전문가들은 선진국 중심의 친환경 무역장벽 기조 강화가 결국 한국 제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들의 조치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사실상 국제 통상 질서를 잘 따르지 않는 국가를 겨냥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국제 규범을 잘 지키는 우리나라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탄소국경세는 국제 무역 규범 위반

-EU의 탄소국경세가 미치는 위험 요인과 대응책은.

△정인교 교수=EU의 탄소국경세는 자국 기업의 산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 온난화 방지라는 주장 뒤에 숨겨진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산업과 에너지 업계의 의견을 십분 반영한 현실적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설정 및 국제무역기구(WTO)를 활용한 탄소국경세제의 부정적 영향 최소화 등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김경한 실장=중국 등 동남아시아가 머뭇거릴 때 한국만 탄소 관련 세금을 강화할 경우 국내 철강 부문 외에도 이를 기반으로 제품을 만드는 자동차·선박과 같은 주요 산업의 가격 경쟁력이 대폭 하락할 수밖에 없다.

△제현정 실장=그린 경제 기조가 한국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환경 부문에서 압도적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지나치게 빠른 탈탄소 기조는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EU, 겉으론 환경 외치지만 산업경쟁력 강화·세수 확보 포석

주판알 튕기는 美, 올 G20 때 中겨냥 환경규제 주도할 수도

한국만 稅 부담 땐 철강 등 직격탄···국내 모든 산업 영향권

-정부는 국내 배출권거래제(ETS) 상용화 등을 내세우며 적용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 교수=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달 방한한 프란스 티메르만스 EU 수석부집행위원장을 만났을 때 탄소국경세가 WTO 규범을 무시하는 조치라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강조했어야 했다. 당시 문 장관은 “한국을 EU의 탄소국경세 대상에서 제외해달라”고 밝혔지만 국가 간에 없던 세금을 만들려면 WTO 체제 내에서 논의를 해 규범을 만드는 것이 국제적 원칙이다. 우리나라는 탄소거래제를 선도적으로 도입해 환경세 관련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탄소 배출 관련 유상·무상 할당 한도 조정 등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이 많다는 점에서 굳이 예외로 해달라는 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

△김 실장=정부가 철강협회 등과 관련 논의를 계속 진행중이다. 정부는 현재 WTO와 EU를 개별 대응하며 조치를 마련 중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EU 등 선진국에서는 중국이 한국을 무역 거점(우회 통로)으로 철강 등을 수출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만 별도 예외는 어렵다.

△제 실장=ETS를 시행 중이라는 이유로 탄소국경세에서 빠지는 것은 쉽지 않다. EU는 자국 기업에도 환경 관련 세금을 물릴 방침이다. 특히 EU 입장에서는 한국만 예외로 인정할 경우 중국과 같은 주변국의 반발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EU가 ETS를 시행 중인 국가에는 해당 비용만큼 탄소국경세를 깎아주는 방안을 내놓을 수 있지만 탄소 관련 세금을 어디에 내느냐도 문제다.

△정 교수=현재 EU가 이야기하는 탄소국경세의 높은 세율은 각국의 반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탄소국경세가 EU의 초안대로 실행될 경우 자유무역을 공조하는 WTO의 역할이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번 이슈는 다방면으로 큰 사안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탄소국경세 이면에는 ‘자국 이기주의’

-EU가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려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 교수=EU가 환경보호나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대명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자국의 산업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담긴 방안이라 봐야 한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탄소국경세 관련 내용을 발표하면서 “해당 제도를 도입해야 유럽 기업이 살아난다”는 말을 공식 석상에서 했다. EU 입장에서는 지금과 같은 산업구조에서는 신흥 개발도상국들에 뒷덜미를 잡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EU 측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엄청난 재정을 푸는 등 국가 재정이 악화됐다는 점에서 세수 확보를 위해서라도 탄소세 신설이 필요하다.

△김 실장=EU는 파리 기후 협약의 틀 안에서 탄소국경세를 만들었다. 결국 탄소 저감에 따른 비용을 EU만 짊어지지 않겠다는 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탄소 저감 비용은 몇몇 국가가 부담하지만 탄소 저감에 따른 효용은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누린다는 점을 EU는 강조한다. 다만 유럽철강협회 내에서도 탄소국경세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나오는 만큼 내부적인 의견 수렴을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탄소국경세 도입이 탄소 저감과 관련한 각국의 ‘프리라이딩’ 방지 측면도 있지만 결국 중국 견제 목적이 강하다고 봐야한다.

국가 간 없던 세금 만들려면 WTO 체제 내 논의가 원칙

정부, 개별 대응 한다지만 배출권거래제 시행만으론 한계

국내 친환경 기술 상용화까진 먼길···정부 차원 지원 시급

김경한 포스코 무역통상실장

-미국도 EU의 움직임에 동조할 것으로 보는가.

△정 교수=일반적으로 EU가 글로벌 통상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를 발표할 경우 미국과 합의를 한다. 결국 대(對)중국 견제라는 미국과 EU의 공통된 목표가 배경에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미국 입장에서는 WTO의 영향력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신통상 질서 구축이 필요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EU가 중국이 매우 부담스러워 할 탄소국경세 카드를 꺼내 들어 미국 입장에서는 보다 손쉽게 글로벌 통상 환경 재편이 가능하다. 미국이 향후 EU의 환경 규제에 동조하는 방식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시나리오도 유효하다.

△김 실장=아직 미국의 입장은 정해지지 않았다. 셰일가스와 같은 화석연료 기반의 에너지 산업이 자국 경제의 한 축이고 미국의 철강 산업이 여타 선진국 대비 환경 규제에 대한 대비가 덜 돼 있다는 점에서 선뜻 나서기 쉽지 않다. 탄소국경세가 자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입장을 낼 처지가 아니다. 미국이 다자나 양자 차원의 다양한 논의를 하며 입장을 차츰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에서 기후변화 의제가 다뤄질 경우 미국은 EU가 관련 의제를 주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결국 미국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탄소국경세 등 글로벌 무역 질서가 재편될 것으로 예상된다.

△제 실장=EU는 탄소국경세 신설 방안을 발표하며 문건 앞장부터 ‘자국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목적을 언급했다. 반면 미국은 이번 탄소국경세가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EU가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한 ‘디지털세’ 도입을 공식화했을 때도 미국은 자국 기업 수익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며 즉시 반발했다는 점에서 지금과 같은 신중한 대응은 결국 미국이 여전히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단계로 봐야 한다.

제현정 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

탄소국경세 적용 제품 늘어날 것

-탄소국경세가 반도체 등 한국의 주력 산업에 미칠 영향은.

△제 실장=유럽이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적용 대상을 반도체 등으로 확대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조심해야 할 부분은 탄소 배출이 많은 화학 산업이다. 다만 바스프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 외에 미국(듀퐁), 한국(LG화학 등)이 모두 글로벌 점유율이 높아 많은 의견 교환 과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 교수=탄소 관련 세제를 국제적 수준으로 작동시킬 경우 세율이 높아져 대부분의 산업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탄소배출거래제나 탄소국경조정세 등을 통해 관련 제도 메커니즘을 고도화해야 하는데 국내 산업의 모든 단계에서 영향이 불가피하다.

△김 실장=탄소 저감 부담은 결국 철강이나 화학 같은 전통 제조업이 많이 짊어질 수밖에 없다. 포스코만 하더라도 현재 철을 생산하는 고로를 유지하면서 여기에서 배출된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은 엄청난 투자가 수반된다. 수소를 통해 친환경 철강을 만드는 수소 환원 제철 또한 관련 기술이 상용화될 때까지 엄청난 기술 투자 및 비용이 필요하다. 향후 기술 상용화 여부도 미지수다. 차라리 환경배출권을 구입하는 게 이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무엇보다 한국만 탄소를 저감한 철강 생산으로 관련 제품의 비용이 상승할 경우 해외 기업만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탄소국경세와 같은 신통상 장벽이 우리에게 기회가 될 가능성은.

△정 교수=싱가포르와 같이 특정 정부가 장기 집권하고 국가 규모가 작은 나라일 경우 이 같은 통상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지만 한국의 정치나 경제 시스템상 예전과 같은 빠른 대응은 쉽지 않다. 탄소 저감 기술력을 우리가 고도화해 관련 시장 수익을 독차지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제 실장=EU 소속의 기업들 또한 탄소 중립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가로저을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고 쉽지 않은 부분이다. 미국은 글로벌 통상 질서를 자신들에게 맞게끔 바꿔갈 수 있는 데다, 기술력·부존자원 등에서 압도적 격차를 가지고 있는 지금과 같은 친환경 무역 질서도 부담이 크게 없다. 반면 우리는 다르다. 특히 ‘지금의 친환경 흐름을 기회로 우리의 기술력을 고도화해 더욱 가파르게 성장하자’는 식의 일부 발언에 대해 산업계 현장에서는 ‘아무말 대잔치’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정리=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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