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 이다빈 엄지척, 김우진의 해피엔딩

박일근 2021. 8. 3. 18:0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편집자주<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태권도 국가대표 이다빈(25)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 여자 67㎏ 초과 결승에서 밀리차 만디치(30ㆍ세르비아)에게 졌을 때 그런 예상을 했다.

그러나 이다빈은 울긴커녕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졌는데도 승자 같은 이다빈과 패자에게 허리 숙여 경의를 표하는 승자의 품격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다빈이 7월 27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67㎏ 초과급 결승에서 세르비아의 밀리차 만디치에게 패한 뒤 승자에게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지바=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울 줄 알았다. 태권도 국가대표 이다빈(25)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 여자 67㎏ 초과 결승에서 밀리차 만디치(30ㆍ세르비아)에게 졌을 때 그런 예상을 했다. 태권도 종주국 선수가 금메달을 못 따면 죄인이 되는 분위기가 없잖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다빈은 울긴커녕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졌는데도 승자 같은 이다빈과 패자에게 허리 숙여 경의를 표하는 승자의 품격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

□ 금메달의 부담감은 양궁도 태권도 못잖다. 그러나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에서 고배를 마신 김우진(29)은 ‘충격’이란 취재진의 질문에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열광할 수 있다”는 현답을 내놨다. 그는 “내가 쏜 화살이고,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냐”라고 되물었다. 높이뛰기에서 4위에 그친 우상혁(25)의 긍정 바이러스는 경기장도 들썩이게 했다. '아쉽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도전을 안 했다면 후회했겠지만 도전했고 가능성을 봐서 후회는 1도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4등을 향해선 “즐겁게 계속 도전하면 못 이길 게 없다”고 응원했다.

7월 31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 8강전에서 김우진이 대만의 당즈준 선수와의 대결에서 과녁을 조준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사진기자단T

□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 4관왕인 시몬 바일스(24·미국)의 기권도 신선했다. 욕먹을 게 뻔한데도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것보다 마음과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선택은 공감을 불렀다. 영웅이 되기보다 선수도 인간이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인생이 경주라면 우린 모두 선수다. 무한경쟁 시대 승자만이 인정받는 독식사회에서 우린 속으론 골병이 들어도 내색도 못한 채 버틸 걸 강요받는다. 그러나 때론 질 수도 있고, 힘들면 기권해도 괜찮다는 걸 선수들은 보여줬다. 국가란 거대 담론이나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부여한 가치가 더 중요하다. 인생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스토리다,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린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경기에선 졌지만 우리 가슴엔 금메달로 남은 '유쾌한 패자'들이 준 위안과 용기다. “덕분에 짜릿했고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선수에게 날리고픈 엄지척이다.

육상 국가대표 우상혁이 8월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 경기에서 4위에 그쳤지만 한국신기록을 달성한 뒤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도쿄=뉴시스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