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촌평]백신대란의 본질

김민수 기자 2021. 8. 3.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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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백신 사전예약시스템은 먹통이 됐다. 백신 접종 예약을 서둘러 하려는 이용자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자신의 접종 일정을 기다리며 하루라도 빨리 예약해서 접종받으려던 국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사전예약시스템이 조기 마감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지난달 12~17일 6일간 진행될 예정이었던 55~59세 대상 사전예약이 첫날 15시간여만에 조기 마감됐다. 예약을 하지 못한 대상자들은 ‘선착순 예약’이었냐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국내 도입된 모더나 백신의 물량이 부족해 더 이상 예약을 받기 어려웠던 탓이었다. 

예약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안일한 대응과 백신 공급사의 공급 지연이 맞물리며 7월 백신 접종은 꼬였다. 예약시스템 과부하를 예측 못하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데다 국내 도입 예정 백신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정부로서는 할 말이 없게 됐다. 그사이 백신 접종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젊은 연령층을 중심으로 4차 유행이 현실화했다. 

미국과 영국 등 백신 개발사를 보유한 일부 국가들은 사정이 다르다. 대량으로 선구매한 백신 물량이 넘치다 보니 부스터샷(추가접종)도 고려하고 있다. 오히려 백신 기피 문화가 만연한 현실에서 백신 관련 허황된 ‘가짜뉴스’와 전쟁을 치르고 있는 모양새다. '백신은 있으니 두려워 말고 신속하게 접종해 달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에게 무료 백신 접종에 착수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미국 백신관광 여행 상품이 국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예약이 안되고 백신 도입이 지연되는 국내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모습이다. 

인류 최초의 메신저리보핵산(mRNA) 백신을 개발한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가 백신 공급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주요 외신들은 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에 공급하는 백신 가격을 화이자가 25%, 모더나가 10% 각각 인상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한국도 내년 계약분부터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산 백신을 높은 가격으로 구매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1년여가 지난 지난해 말 해외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이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백신을 개발한 선진국들이 선구매 방식으로 충분한 백신을 확보할 것이라는 예측과 전세계 백신 제조 시설 부족으로 수급 불균형이 일어날 것이라는 분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이미 현실화했다. 접종 예약과 수급 불안정의 본질적인 문제는 결국 자체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백신 주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기간 축적된 기초과학 역량과 글로벌 임상이 가능한 시스템 지원,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바이러스·감염병·백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개발 투자 등이 어우러져 단기간 내 백신 개발을 가능케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에게도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국산 백신 플랫폼을 확보할 기회가 있었다. 2015년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이 국내에 전파됐을 때 백신 플랫폼 연구가 이뤄졌지만 예상보다 빨리 종식된 데다 백신 시장이 크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연구가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러스와 감염병, 백신 R&D도 당장 경제적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다행히도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정부가 국산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다각도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국내 백신 개발 기업들도 글로벌 임상3상 관문을 넘기 위해 비교임상, 해외 현지 임상 등 우회 전략을 모색중이다. 정부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코로나19 백신을 자체 개발한다는 목표를 힘주어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입자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앗아갈 수 있는지 처절한 교훈을 주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정부의 공언대로 자체 백신을 확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초과학과 임상연구에 대한 꾸준한 지원과 관심이 필수적이다. 자체 백신 개발 시기는 빠를수록 좋겠지만 ‘임상 완료’와 ‘개발 성공’이라는 완성된 결과물이 더 중요하다. 코로나19가 종식된다고 해서 또다른 바이러스와 감염병은 미래 인류의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김민수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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