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김부겸 총리가 만나야 할 사람

이재훈 2021. 8. 3.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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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코로나19 세계 대유행]

김부겸 국무총리가 지난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훈 사회정책팀장

코로나19 4차 유행이 공식 선언된 날은 7월7일이다. 방역을 완화한 새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시행한 지 일주일 되는 날이었다. 이날 신규 확진자 수는 1212명이었는데, 이후 한달 가까이 1000명대 이하로 내려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측됐다. 6월 중순부터 확진자 수가 스멀스멀 늘자, 전문가들은 새 거리두기 개편안 시행을 8월말로 늦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백신 접종률이 아직 높지 않은데다, 여름 휴가철 이동량이 걱정되며, 델타 변이 확산도 우려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듣지 않았다. 고위험군인 고령자 접종이 어느 정도 진행돼 치명률이 높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시작한 방역 완화는 겨우 11일 만에 끝났다. 정부는 7월초 확진자가 폭증하자 화들짝 놀라 12일부터 수도권에 새 거리두기 개편안 최고 단계인 4단계를 적용했다.

정부가 전문가 조언대로만 정책을 운용할 필요는 없다. 정부처럼 방역을 완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었다. 문제는 일관성이다. 정책에 일관성이 없으면 시민들은 신뢰를 잃게 된다. 만약 정부가 잘못 판단했다면, 솔직히 실수를 인정하고 재차 시민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는 다른 판단을 한 것 같다. 7월 내내 엉뚱한 대상을 비판하는 것으로 실수를 감추려 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7월3일 서울 도심에서 8000여명이 모여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은 14일 국회 예결위원회에서 “민주노총 집회 직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집회에서 감염이 전파된 것으로 읽히는 주장인데, 김 총리는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되레 “지자체별로 발생한 사람이 혹시 민주노총 집회와 인과관계가 없는지 역학조사를 해달라고 했다”고 호응했다.

16일과 17일 집회 참석자 3명이 확진 판정을 받자 김 총리는 발언 수위를 높였다. “여러 차례 자제를 요청했던 집회 참석자 중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보수 언론에 비중 있게 실리며 민주노총이 마치 4차 유행의 주범인 양 묘사됐다. 정작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는 “집회를 통한 감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밝혔고, 전문가들은 실외 집회가 실내보다 감염 확률이 17분의 1 정도라고 말해왔지만, 김 총리는 또다시 듣지 않았다.

김 총리의 이런 행보가 영향을 끼쳤을까. 23일 민주노총의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집회를 하루 앞두고 원주시는 갑자기 거리두기를 3단계로 격상했고, 집회에 대해서는 임의로 4단계를 적용해 1인시위만 허용했다. 경찰도 차벽으로 건보공단 본사를 차단했다. 시 정부와 경찰이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마무리해달라는 노동자들을 바이러스 취급한 것이다.

하지만 방대본은 26일 집회 참석자 3명의 감염 경로는 집회가 아니라 한 식당이라고 발표했다. 23일 원주 집회에서도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총리는 아직 자신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여러 개의 변이로 진화하면서 점점 더 강한 전파력을 갖추고 있다. 백신 접종으로 치명률은 낮출 수 있을지 몰라도, 이 바이러스들을 영원히 사라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지금처럼 모든 상황을 억제하고 범법화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방역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걸 뜻한다. 정부가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감염병 전파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부터 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만 김 총리가 그 작업을 하기 전 먼저 찾아가야 할 사람이 있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2차 파업 때 뜬금없이 단식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지금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김용익 이사장이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집회를 평화롭게 멈출 수 있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김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n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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