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비너스의 꽃바구니'로 불리는 해면 이야기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1. 8. 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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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평양 깊은 바다 바닥에 사는 유리해면류인 비너스의 꽃바구니 모습으로 콜라겐 단백질 골격으로 이뤄진 전형적인 해면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다. 위키피디아 제공

지난달 2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는 무려 8억9000만 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해면동물의 화석을 발견했다는 논문이 공개됐다. 기존의 가장 오래된 동물화석인 6억 년 전 해면보다 3억 년이나 더 오래된 것이다. 이게 맞다면 동물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논문은 암석에 새겨진 밝은 그물모양 구조물이 오늘날 해면의 콜라겐 단백질 골격 구조와 비슷해 해면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참고로 인류는 오래전부터 콜라겐 단백질 골격을 갖는 해면을 목욕용 스펀지 등 여러 용도로 이용해왔다. 영어로 해면이 '스폰지(sponge)'인 이유다.

이보다 앞서 7월 22일자 ‘네이처’에는 해면에 대한 또 다른 논문이 실렸다. 해면의 골격이 바닷물 흐름의 충격을 완화하고 부유물 섭식을 돕는데 유체역학적으로 최적화된 구조라는 내용이다. 한편 자매지인 ‘네이처 재료’ 2월호에는 이 해면의 골격이 외부의 힘을 견디는데 기계역학적으로 최적화된 구조라는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이 실렸다. 유체역학과 기계역학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구조를 지닌 이 해면의 영어 이름 ‘Vinus’s flower basket’을 직역하면 ‘비너스의 꽃바구니’다.

○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골격

비너스의 꽃바구니의 골격은 콜라겐 단백질이 아니라 이산화규소인 유리다. 실제 비너스의 꽃바구니를 포함해 실리카 골격을 지닌 해면을 영어로 'glass sponge', 직역하면 유리해면이라고 부른다. 필리핀과 일본, 제주도 둘레 서태평양 수심 수백미터 해저에 사는 비너스의 꽃바구니는 얼핏 보면 수세미오이로 만든 천연 수세미가 떠오른다. 실제 비너스의 꽃바구니의 우리 이름은 바다수세미로 수세미와 크기도 비슷하다.

그러나 골격 구조는 전혀 다르다. 콜라겐 단백질 해면이나 식물 섬유가 엉킨 수세미는 골격이 유연해 목욕이나 설거지 도구로 쓸 수 있지만 바다수세미는 쓸모가 없다. 골격이 유리로 만들어진 정교한 구조라 몸이나 그릇에 대고 문질렀다가는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깊은 바다에서 유리해면은 잘 살아간다. 비록 유리이지만 독특한 골격 구조로 웬만한 힘을 견딜 수 있고 탄성도 꽤 있기 때문이다.

수세미처럼 생긴 유리해면은 한쪽 끝을 해저에 부착한 상태로 위로 갈수록 폭이 조금씩 넓어지다가 끝이 잘린 형상이다. 위강으로 불리는 안은 텅 비어 바닷물이 드나든다. 표면을 자세히 보면 현수교의 케이블처럼 유리섬유 다발로 이뤄진 침골(단세포 생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생물의 조직이나 세포 내에 들어 있는 미세한 골격 요소)이 섬세하게 직조된 골격이 보인다. 모기장 그물처럼 가로세로 방향 격자에 대각선 방향 격자가 이중으로 엇갈려 겹쳐져 있다. 그리고 바깥쪽에는 역시 침골로 이뤄진, 레이스가 연상되는 돌출물이 나선을 그리며 붙어있다.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은 가로세로 사각형 격자와 두 줄로 된 대각선 격자가 엇갈려 배치된 구조다. 아래는 이를 도식화한 그림이다. ‘네이처 재료’ 제공

같은 양을 썼을 때 가장 강해

지난 2월 ‘네이처 재료’에 실린 논문은 돌출물을 제외한 골격 원통을 이루는 이중 격자가 기계공학적으로 효율적인 구조임을 밝혔다. 연구자들은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에 기반한 구조와 이와 비슷한 다른 구조 세 가지의 강도를 비교했다. 공정한 비교를 위해 들어가는 재료의 양은 같게 했다.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에 기반한 구조 A는 가로세로 방향 사각형 격자의 한 변 길이가 L이고 침골의 굵기가 0.1L이다. 참고로 비너스의 꽃바구니에서 L은 3㎜ 내외다. 그리고 대각선 방향 침골의 굵기는 0.05L로 가늘다. 구조 B는 대각선 방향 격자의 한 변 길이가 √2L로 성기고(대신 굵기가 0.1L로 들어가는 재료의 양은 같다) 교차점이 가로세로 방향 격자 교차점과 겹쳐 있다. 

구조 C는 대각선 방향 격자의 한 변 길이가 (1/√2)L로 촘촘한 대신 굵기가 0.05L로 가늘고(따라서 들어가는 재료의 양은 같다) 역시 교차점이 가로세로 방향 격자 교차점과 겹친다. 구조 D는 가로세로 방향 사각형 격자만 있는 구조로 대신 굵기가 0.1L(1+1/√2)로 약간 더 굵다(역시 재료의 양을 같게 하려고).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에 기반한 구조(맨 위)는 비슷한 다른 구조들보다 외부 힘에 덜 변형된다는 시뮬레이션 및 실제 모형실험 결과다. 네 구조에 들어간 재료의 양은 같다. 아래 그래프 가로축은 구조물이 변형된 정도, 세로축은 견디는 힘으로 구조 A(파란색)가 월등함을 알 수 있다. ‘네이처 재료’ 제공

컴퓨터시뮬레이션과 직접 모형을 만들어 실험한 결과 외부에서 여러 형태의 힘을 가했을 때 가장 변형이 적은 구조는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에 기반한 구조 A로 밝혀졌다. 만일 이런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네 구조 가운데 가장 강한 하나를 고르라면 난 B와 C를 두고 망설였을 것이다. 구조 A의 대각선 방향 골격은 뭔가 엉성해 별로 도움이 돼 보이지 않아서다. 차라리 가로세로 골격에 재료를 다 써 굵게 만든 구조 D가 나아 보인다. 

이런 반직관적인 결과 때문이지 비교적 간단한 실험의 결과임에도 ‘네이처 재료’ 같은 영향력 있는 학술지에 논문이 실린 것 같다. 연구자들은 유리해면의 골격이 다리나 건물 같은 거대한 구조물뿐 아니라 의학 임플란트 같은 작은 구조물에도 응용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료를 가장 덜 쓰고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을 보다가 문득 한옥 문창살의 격자무늬로도 어울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문창살 격자무늬에 이미 동일한 구조가 있지 않을까. 인터넷에서 검색한 결과로는 없었다. 나름 균형미를 갖추고 있는 기하학 패턴으로 보임에도 장인의 상상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 걸까. 만일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으로 문창살 디자인등록출원을 한다면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균형미를 갖춘 기하학 패턴인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은 한옥 문창살 격자무늬로도 어울리지 않을까. 네이처 재료 제공

○ 

유속 늦추고 안에서 소용돌이 일으켜

비너스의 꽃바구니 역시 다른 해면동물처럼 바닷물이 골격 사이의 틈을 지나 위강으로 들어오면 채찍이 연상되는 편모가 달린 동정세포가 떠다니는 먹이를 끌어들여 먹는 부유물섭식자다. 안으로 들어온 물은 꽃바구니의 주둥이인 대공을 통해 빠져나간다. 

보통 이 정도 크기의 구조물이 초속 1~10㎝ 또는 그 이상 속도인 물의 흐름에 놓이면 표면에 와류(소용돌이)가 형성되면서 빠르게 지나가고 유속의 변동이 커지고 항력이 물체를 끌고 가는 힘도 상당하다. 따라서 바닷물이 위강으로 들어가기보다는 표면을 따라 비껴 흐르거나 강한 항력에 해면 몸통이 쓰러지거나 바닥에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 유리해면은 이 문제를 해결했기에 해저에서 부유물섭식자로서 살아갈 수 있다.

연구자들은 네 가지 구조 모형을 만들어 유리해면의 골격 구조가 바닷물의 흐름에 미치는 영향을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통해 분석했다. 첫 번째 모형은 속이 차 있는 원기둥이고 두 번째 모형은 이 원기둥에 레이스(돌출물)가 나선을 그리며 달려 있다. 세 번째 모형은 표면이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의 그물망인 속이 빈 원기둥이고 네 번째 모형은 여기에 레이스가 달린 상태, 즉 온전한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이다.

비너스의 꽃바구니가 심해에서 바닷물의 흐름에 휩쓸려 뽑히거나 쓰러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 격자 구조가 물의 흐름을 늦추고 안정화한 덕분이라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바깥에 나선을 그리는 돌출물은 안으로 들어가는 물이 위강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해 부유물 섭식과 수정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인다(오른쪽에 클로즈업). 네이처 제공

유속을 달리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비너스의 꽃바구니 골격의 그물망이 유속의 변동을 억제하고 항력을 줄였다. 비너스의 꽃바구니가 해저에서 물의 흐름에 휩쓸려 넘어지지 않고 버티는 이유다. 한편 나선을 그리는 돌출물을 더하자 원통 내부 공간에 천천히 흐르는 와류(소용돌이)가 생겨났다. 그 결과 부유물 섭식이 쉬워졌고 번식도 수월해진 것으로 보인다. 해면은 다른 개체가 내보낸 정자가 바닷물에 떠다니다 위강으로 들어와 난자를 만나면서 수정이 일어난다.

비너스의 꽃바구니 안에는 물론 꽃이 들어있지 않다. 대신 종종 새우가 들어있다. 새우 유생이 골격 사이 틈으로 들어와 부유물을 먹고 자라 덩치가 커지면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비너스의 꽃바구니는 물이 빠져나가는 윗부분(대공)도 그물망으로 덮여있다. 생태학 관점에서는 새우가 해면의 창살(골격) 안에서 옥살이하는 게 아니라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더부살이하는 편리공생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비너스의 꽃바구니를 카이로도케쯔(偕老同穴)라고 부른다. 해로동혈은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중국 문헌 ‘시경(詩經)’에 나오는 해로와 동혈을 합친 사자성어다. 부부가 되면 평생을 함께 하라는 말이다. 실제 비너스의 꽃바구니에 새우 유생 두 마리가 들어있으면 각각 암수로 자라 짝짓기한다. 그래서 이름도 도케쯔에비, 즉 동혈새우다. 일본에는 비너스의 꽃바구니, 아니 카이로도케쯔를 약혼 선물로 주고받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비너스의 꽃바구니를 카이로도케쯔(偕老同穴)라고 부른다. 원래는 해면 안에 갇혀 사는 새우 한 쌍을 일컫는 말이었다가 해면 자체의 이름이 됐다. 안에 사는 새우가 잘 보이게 해면 한쪽을 뜯었다. NOAA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2012년 9월부터는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9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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