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전 칼럼] "천천히, 낮게, 약하게-다 함께"

한겨레 2021. 8. 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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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전 칼럼]택배노동자들은 오늘도 점심을 거른 채 폭염 속에 뛰어야 한다. '일베'들의 허세도 남성들이 정한 종목에서 '일부' 남성들이 여성보다 더 빠르고, 높고, 강하다는 올림픽의 허상에 근거하고 있다. 올림픽은 그 허상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올림픽의 구호는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천천히, 낮게, 약하게-다 함께" 이것이 현재 인류 위기의 생존 비책이 되어야 한다.

신영전

올림픽의 역사는 치열한 싸움의 역사이다. 그 싸움은 경기장 안과 밖에서 이루어진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세계 청년들이 모여 함께 평화를 꿈꾸는 올림피아를 부분적으로 이 땅에 실현하는 공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신체적으로 강력한 활동에 여성들이 참여하는 것은 그들의 여성적 매력을 파괴하는 동시에 스포츠의 몰락과 타락을 가져올 것이라며 여성의 올림픽 참여를 반대했고 그리스 민족은 태생적으로 나태한 동양 인종들과는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한 ‘유럽 백인 남성 우월주의자’이기도 했다.

여성이 모든 종목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출전하게 된 것은 근대 올림픽이 시작된 지 116년이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부터이다. 이는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얼마 전 독일 여자체조대표팀이 “무엇을 입을지는 우리가 정한다”며 노출 없는 경기복을 선택한 것처럼, 치열한 장외 싸움의 결과였다.

2014년 모나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 임시총회는 올림픽 유치 및 개최지 결정 절차, 성적 취향과 성에 따른 차별 금지, 투명한 재정 운영과 윤리규정 강화 등을 담은 ‘올림픽 의제 2020’을 채택했다. 도쿄올림픽 개막을 사흘 앞두고는 125년간 올림픽의 상징이었던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구호 뒤에 ‘다 함께’를 추가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하지만 올림픽 경기장 안과 밖에서는 인종·민족주의, 상업주의와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구호 역시 여전히 모순어법이다. 패자와 승자를 나누면서 함께하기는 어렵다. 더욱이 빠름, 높이, 힘에 대한 지향은 승자독식사회의 핵심이고 암암리에 느리고, 약한 노인, 장애인을 패자로 만든다. 그것을 반증하듯, 올림픽의 메달 순위는 백신을 독점한 나라 순위와 일치한다. 백신을 나누자는 코백스 퍼실리티도 강대국들이 자기네 인구의 5~10배나 되는 백신을 독점하면서 유명무실해졌다. 백신의 지식재산권 문제도 진전이 없다. 7월말 현재 저개발국가의 백신접종률은 1.1%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성찰 없는 올림픽은 우생론이다. 쿠베르탱이 올림픽의 부활을 제안한 것도 보불전쟁에서 프랑스가 진 이유를 신체의 허약함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더 강하게!”를 외치는 현재의 올림픽은 여전히 “체력은 국력”을 외치며 강인한 노동자와 군인을 기르고자 했던 우생론의 자장 안에 있는 셈이다. 또한 이 세상의 파괴는 대부분 더 빠르고, 더 높고, 더 강해지려는 것이 만든 것이다. “언제 도착하냐”는 독촉전화에 택배노동자들은 오늘도 점심을 거른 채 폭염 속에 뛰어야 한다. ‘일베’들의 허세도 남성들이 정한 종목에서 ‘일부’ 남성들이 여성보다 더 빠르고, 높고, 강하다는 올림픽의 허상에 근거하고 있다. 올림픽은 오늘도 그 허상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올림픽의 구호는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 “천천히, 낮게, 약하게-다 함께” 그리고 이것이 현재 인류 위기의 생존 비책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픽 기간을 ‘히에로메니아’(신성한 시간)라 불렀다. 이 기간엔 모든 적대행위가 중지됐다. 히에로메니아가 선포되었지만 평화는 요원하다. 며칠 전에도 12살 팔레스타인 소년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죽었다. 시리아에서도 10년 넘게 폭격이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2만명에 달하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낳았던 2011년 도호쿠지역 쓰나미의 비극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400만명 넘는 이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열린 올림픽이다. 고대 올림픽 역시 죽은 자를 추모하기 위한 장례 경기에서 시작됐다. 그들은 왜 주검 앞에서 운동경기를 열었을까? 그리스의 역사학자 야나키스는 그 이유 중 하나가 살아 있는 자들에게 삶의 연속성에 대한 확신과 죽음이 절대 생을 파괴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올림픽은 적어도 ‘부흥’이 아니라 ‘추모’의 올림픽이 되어야 하고, 전쟁, 기후위기, 전염병 창궐로 멸망을 앞둔 인류가 성, 인종, 국적과 상관없이 함께 싸우기를 결의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할까? 스멀스멀 몰려오는 비관 앞에 한 여인이 달려온다. 멜포메네라는 가명으로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마라톤에 참여했던 여성이다. 그녀는 여성의 참여가 금지된 올림픽에 남자 복장으로 출전하였고, 대회 관계자들이 경기장 진입을 막자 마지막 한 바퀴를 경기장 밖에서 돌아야 했다. 그녀의 기록은 4시간30분. 현재 마라톤 세계기록 2시간1분대에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녀야말로 진정한 올림픽의 승리자였다. 나는 그녀가 여성만을 위해 뛰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 땅의 모든 느리고, 낮고, 연약한 이들의 대표 선수였다. 125년 전 일이라 그녀의 사진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도쿄올림픽 개막식 날, 그리스 다음으로 난민팀 깃발을 들고 입장하는 29명의 선수들 속에서 언뜻 그녀의 얼굴을 본 듯도 하다.

한양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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