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소유자=중산층'이라는 착각

한겨레 2021. 8. 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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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세상읽기]
2021년 7월 29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이원재 | LAB2050 대표

서울주택도시공사 사장 후보에 올랐다가 자진사퇴한 김현아 전 국회의원은 억울할 것이다. 자신이 그만한 자산가라고 생각해본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부동산 4채를 소유했다고 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닐 수 있다. 열심히 일했고 부부가 함께 벌었고 지역을 옮겨 다니며 집이 필요해졌고 필요할 때마다 집을 사들였다. 본인은 열심히 일하던 전형적인 중산층인데, 우연히 집값이 좀 올랐을 뿐이다.

그런데 김 전 의원의 부동산 자산은 시가로 최소한 20억원을 넘는다. 못해도 우리나라 상위 2%에 드는 부동산 자산가다.

부동산 자산 기준으로 우리 사회 계층을 나눠보자. 가진 부동산 자산이 20억원 이상인 가구는 상위 2%에 든다. 12억원만 되어도 상위 5%이고, 8억원도 10%에 든다. 2020년 통계청 조사 결과 데이터를 토대로 보면 그렇다.

‘서울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믿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지금 ‘강남 아파트 한 채'는 대한민국 2%의 증거다. ‘서울 아파트 한 채'는 대한민국 10%의 증거다.

나는 김현아 전 의원 같은 분들을 자주 만난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일했고, 정당하게 돈을 벌었고, 필요해서 집을 샀고, 본인은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믿는다. 직장에서 버티느라 고통스럽고 자녀 교육비 때문에 힘겹다. 그저 집 사기가 지금보다 수월했던 때를 살았다.

그런데 보유한 집값이 우연히 올랐고, 원하지도 않던 자산가 취급을 받고, 재벌 일가 같은 부자들만 받는 줄 알았던 세금 고지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분통이 터진다. 열심히 산 것뿐인 내게 세상이 왜 이러냐고.

마음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그분들은 ‘평범한 중산층’이 전혀 아니다. 경제정책, 사회정책을 스무해 넘게 들여다봤지만 상위 2%, 10% 계층을 ‘평범한 중산층’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사전에는 ‘중산층은 중간 정도의 자산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고 나와 있다. 자산 가액이 전체 가구 중 상위 30~70% 사이라면 중산층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자산 가액 기준으로 그 계층에 속한 가구는 1억6천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 계층에서 가장 높은 상위 30%선을 봐도 3억2천만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부동산 상위 계층은 스스로 강화되고 대물림된다. 부동산 상위 계층일수록 고학력자가 많다. 이 계층에서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도 많이 한다. 고학력자들이 투자에 성공해 자산가치를 높였고, 자산이 있는 사람들이 자녀들에게 더 많은 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부동산과 학업능력이 함께 대물림되는 모양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능력으로 열심히 일해 ‘시대적 특혜’까지 받으면서 그 자리에 올라섰다. 계급이 없던 사회, 교육과 부동산을 통해 지위 상승을 이뤄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지성인 부동산 부자’들이 되었다. 과거 ‘땅부자’들이 망나니 자녀에게 땅이나 물려주어 먹고살게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던 것과 반대로, 새로 등장한 부동산 부자들은 그들의 자녀들까지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평범한 중산층’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다.

세금은 도덕적 판단의 결과가 아니다.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함께 부담하는 돈이다. 따라서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부담해서 공동체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 가운데 세금 징수가 효율적이고 사회 역동성을 해치지 않으면 더 좋다. 그러니 부동산 자산처럼 아무런 노력 없이도 형성될 수 있는 자산에 과세하는 것이 좋다. 자산 가격이 치솟고 노동의 가치는 땅에 떨어지는 시절, 부동산 보유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인간 활동에 대한 과세는 완화하는 방향이 옳은 이유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산을 많이 가졌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명예로운 일이다. 다만 사회의 공동체성과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합당한 세금 부담은 필수적이다. 어쩌면 소유에 따른 세금은 명예로운 훈장과 같은 것이다. 스스로 중산층이라 착각하고 있던 ‘서울 아파트 소유자’들도 이제 그 명예를 누릴 때가 됐다.

포용해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강자임을 깨닫는 것, 그리고 그 지위를 명예롭게 여기는 것, 그것이 포용사회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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