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권의 뒤땅 담화] 본인 사망 빼곤 골프 약속 지키라고?

2021. 8. 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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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권 명문골프장이 얼마 전 코로나19 확진자 때문에 전면 폐쇄되는 일이 발생했다.

오전 10시께 경기를 진행하던 한 플레이어가 보건당국으로부터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것. 본인은 즉시 격리 이동수단을 통해 필드를 빠져나갔고 골프장은 그 순간 운영을 중단했다.

캐디와 동반자는 물론 당일 그 시점 이전에 해당 골프장을 이용한 모든 사람이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다. 확진자보다 뒤에 골프를 진행한 모든 팀도 골프를 중단했고 클럽하우스 공간을 함께 사용한 사람들 역시 코로나 진료소로 향했다. 확진자는 그날 해당 골프 팀을 주선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전날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을 만나 본인도 검사를 받아 결과를 기다리던 상태였다. 골프 주선자의 고민이 더해져 하루 전 골프 약속을 취소하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방역수칙을 어긴 결과 본인도 상상하지 못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하루 매출과 방역비 등 골프장에 끼친 경제적 손실이 막대한 데다 캐디를 비롯한 골프장 종사자, 동반자에게 민폐를 끼쳤다. 모두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했고 일부는 격리까지 됐다.

비상시국에서 골프 약속이 무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흔히 ‘골프는 본인 사망 아니면 지켜야 한다’는 속칭 골프계 불문율이 있다. 그만큼 골퍼들에게 약속은 중차대한 일이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 하루를 투입하는 것은 큰 결정이다. 그래서 웬만한 사정이 발생해도 정해진 골프 약속이라면 우선순위에 둔다.

요즘 같은 코로나 비상시국엔 동반자들을 이런 부담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물론 위의 사례에선 확진자가 종합적으로 잘못 판단했지만 골프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누구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주선자가 하루 전에 빠지면 다른 동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혹시라도 나머지 동반자끼리 초면이라면 어떨지 아찔하다. 코로나 시대엔 이런 상황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얼마 전 필자도 골프 약속 하루 전에 확진자와 접촉해 빠져야겠다며 어렵게 사정을 피력하는 동반자의 전화를 받은 적 있다. 순간 맥이 풀렸지만 부담 갖지 말라며 상황을 수습했다. 결국 다음날 3인 플레이를 했다.

예전엔 3인 플레이 자체를 허용했는데 골프장 특수로 요즘 대부분 골프장은 나머지 동반자에게 1인당 1만원씩 추가 부담을 조건으로 내건다. 보건 당국의 검사 요청 문자메시지 등을 골프장에 제시하면 추가 비용 없이 3인 플레이를 허용해야 한다.

골프 약속과 추가 비용에 대한 부담 때문에 잠재적 코로나 확진자가 무리하게 골프장을 찾으면 골프장으로서도 결코 유리하지 않다. 위에서 예를 든 확진자에게 골프장과 보건 당국이 피해보상을 요구했는지 알 순 없다.

무리하게 골프를 진행하는 골퍼도, 3인 플레이 추가 비용을 부담시키는 골프장도 모두 손해다. 코로나에 감염된 골프장이란 소식이 알려지면 골프장 내장객이 줄어들 것은 뻔하다.

건강에 특히 민감한 골퍼도 있다. 코로나 이전엔 함께 카풀을 했는데 집이 가까운데도 어느 순간 따로 골프장을 간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염려 때문에 혼자 이동하고 가능하면 접촉을 줄이려는 의도다. 라커룸 대신 집에서 골프복을 착용하고 골프장으로 이동하고 본인의 차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

골프 전후 식사도 가능하면 피하려는 골퍼도 있다. 건강에 대한 자신의 민감성을 동반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여름철엔 비 예보로 골프 약속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전날 밤 혹은 당일 집에서 출발할 때, 골프장에 도착했거나 골프 도중 비가 올 때 취소 여부가 헷갈린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레이더 구름 영상을 보며 예측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확한 예측은 어렵다. 사람마다 진행 여부를 놓고 생각하는 바가 달라 상황을 수습하기 난해하다.

어떤 사람은 일기예보를 내세워 내일 당연히 비가 오는 걸로 예단하고 취소하자고 전날 전화로 주장한다. 일단 내일 아침 일어나서 상황을 보고 판단하자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새벽부터 비가 오니 다음으로 미루자는 측과 골프장에 전화해 현지 사정을 확인하고 결정하자는 쪽으로 나뉜다.

골프장엔 비가 내리고 있어도 가는 도중 혹은 식사 후에 그칠 수 있으니 일단 골프장으로 가자는 파가 생긴다. 현장에서 결정하자는 부류다.

골프가 아니라도 모처럼 얼굴 보고 식사라도 하고 오자는 식이다. 반면 새벽같이 일어나 왕복 2시간 이상을 허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도 무시하지 못한다. 이처럼 비 예보로 전날 밤부터 심리게임이 시작된다.

이럴 땐 친구나 부담 없는 사이라면 솔직하게 전화나 카톡으로 각자 의견을 피력하고 결론이 나지 않으면 연장자의 결정에 따르면 되지 않을까. 혹시 건강상의 이유라면 양해를 구하는 게 현명하다.

본인은 모처럼 라운드를 한다면서 동반자 처지에 아랑곳 않고 진행하자거나 비 한 방울에도 바로 짐을 싸버리는 독재형은 공감 부재다. 예전에 필자가 아는 직장인끼리 아침 라운드가 있었다.

첫 홀 출발 직전 비가 한두 방울 살짝 떨어졌는데 상사가 바로 스톱하고 집에 가자며 짐을 싸 동반자 모두 황당해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한 사람은 모처럼 골프가 잡혀 일주일 전부터 매일 연습장을 다녔는데 중도포기라는 소리에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상사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백을 싸야 했다. 갑질이 따로 없다.

만약 상대방을 접대하거나 초청하는 자리라면 정중하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한다. 자기 기분대로 몰고 가면 접대는커녕 역효과만 난다.

라운드 도중 비가 와도 변수다. 그린이 물에 잠겨도 강행하자는 파와 바로 스톱하고 클럽하우스로 철수하자는 부류로 나뉜다.

이왕 쳤으니 비에 젖어도 전반 라운드만 돌고 빠지자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본인 생각을 갖고 있지만 동반자들의 생각을 몰라 눈치만 본다.

동반자들이 초면이라면 매우 난감하다.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되 다수결로 따르는 게 좋다. 물론 소수 의견도 섬세하게 배려해야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들어 죽겠다는데 다수결이라며 끌고가다시피 진행을 강행하면 곤란하다. 정말 힘든 사람은 본인의 특수한 상황을 피력하고 원하는 동반자끼리만 진행할 것을 요구하면 된다.

동반자들도 중도 하차 의견을 존중하고 나머지 동반자들끼리 진행하면 된다. 서운해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기로 돈도 잃고 갑자기 내린 비로 지치고 체력도 방전돼 중단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데 상대방이 강행을 요구해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 초청이나 접대하는 자리라면 정중하고 신중하게 의견을 구해야 한다.

골프입문 초기엔 우중 라운드도 마다않다가 구력이 쌓이면서 횟수가 줄었다. 20여 년 전 가평 소재 썬힐골프장에서 엄청난 폭우 속에 골프를 하다가 물에 잠긴 그린에서 퍼팅을 못해 4홀을 남기고 철수했다. 이후엔 빗속 라운드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필드에서 골프를 할 때만 매너와 인격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골프 취소 여부에 대한 접근 태도와 방식에서도 노출된다.

본인 사망 아니라도 골프 약속은 취소할 수 있다.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 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31호 (2021년 8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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