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Wall] "앗! 차가워! 더위 어디 갔지?"

글·사진 주민욱 기자 2021. 8. 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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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골 계곡등반
남부지방 등반가들의 빙벽등반 성지
산청 웅석봉 곰골 계곡을 오르다
물살을 맞으며 10m폭포를 오르는 안소영씨. 그녀의 얼굴에서 더위는 사라지고 오직 즐거운 등반의 시간만 남았다.
여름철 폭염 직전에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 장마다. 우리나라도 아열대기후로 변해서 기습 폭우가 많이 발생한다. 올해는 좀 늦다고 생각했는데 30여 년 만에 늦은 장마라고 한다. 그렇다. 등반에 나선 오늘도 장마의 영향권 아래 있다. 구름은 입 안에 물을 가득 머금은 아이의 볼마냥 장난스럽다. 곧 토할 것 같아 보인다.
진주 스카이클라이밍센터의 센터장인 김규철씨를 비롯 센터 회원인 최종화씨와 안소영씨가 동행했다. 여름 더위를 식혀 줄 계곡등반을 위해 경남 산청군 산청읍의 웅석봉 골짜기인 곰골로 향한다.
계곡을 거슬러올라가는 진주 스카이클라이밍 회원들.
진주에서 차로 30여 분을 달리니 내리저수지가 왼쪽으로 시원하게 나타나고, 사찰 지곡사를 지나자 아담한 비포장 주차장이다. 여기에 차를 세우고 곧장 계곡으로 들어갈 채비를 한다. 곰골 등반의 리딩을 맡은 김규철씨가 말을 건넨다.
“오늘 수량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마가 벌써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아직 안 왔어요.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카메라 젖지 않게 조심하세요”라며 당부한다.
비가 쏟아지면 계곡등반이 악조건에 접어드는 건 물론이고 위험할 수 있다. 서둘러 장비를 착용하고 계곡에 들어선다. 수량이 많이 적다. 순간 모두 당황했다. 이 정도로 물이 얕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웅석봉 곰골은 굉장히 깊은 계곡 중 하나라 수량이 많은 계곡으로 알려져 있었다.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진주 스카이클라이밍 김규철 센터장. 바위 표면에는 이끼가 있어 등반 난이도를 높이는데 한몫한다.
물 없는 곰골, 속 타들어가
웅석봉은 산청읍 남쪽에 자리 잡은 해발 1,099m의 산이다. 특히 곰골은 이곳 등반가들에게 겨울 빙벽등반지 성지로 손꼽힌다. 얼음 구경하기 어려운 남부지방 등반가들에게는 빙벽등반 훈련지로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다양한 난이도의 크고 작은 빙폭이 여럿 있다.
곰폭의 빙폭은 건폭과 수폭으로 나뉜다. 비가 오지 않는 이상 말라 있는 폭포와 항상 물이 흐르는 폭포를 말한다. 건폭은 눈이나 비가 많이 온 후 큰 추위가 와야 결빙되고, 수폭은 항상 결빙되어 있어 등반 가능하다. 곰골은 웅석봉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라 볕이 드는 시간이 적어 한 번 결빙되면 잘 녹지 않아 천혜의 빙벽등반장이 되었다.
올라갈수록 수량은 줄어들어 마른계곡으로 변했다. 이것 또한 등반의 즐거움이다.
주차장에서 5분을 걸어 올라서니 ‘선녀탕’ 푯말이 나온다. 수량은 적지만 푸른 물이 반짝인다. 본격적인 계곡등반의 시작이다. 크고 작은 폭포가 여럿일 정도로 바위가 많은 험한 골짜기지만 우회하지 않고 로프로 확보를 하며,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정면돌파하는 것이 계곡등반의 매력이다. 폭염을 날려버리기에 딱 좋은, 여름 한철 등반인 것.
5m 높이 폭포다. 가늘지만 쉼 없이 물줄기가 쏟아진다. 최종화씨가 선등으로 나선다.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차분하게 등반을 이어간다. 짧은 등반을 이어가자 곧 완료 지점에 도착해서 로프를 정리한다.
물줄기를 맞으며 등반 종료지점으로 향하고 있다. 경사가 완만해지지만 미끄러워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뒤를 이어 안소영씨가 등반한다. 거센 물벼락을 맞지만 무더운 여름 더위는 저 멀리 있음에 틀림없다. 젖은 로프를 정리하고 계속 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지만, 불변의 법칙은 어쩔 수 없다. 상류로 오를수록 수량이 메말라간다.
계곡의 바위를 거슬러 오른다. 수량이 부족해도 산 좋아하고 자연 좋아하는 등반가들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하류에선 차디찬 물이 있어 신선하고 짜릿한 맛이 있었지만, 이제 마른 계곡이다. 스카이클라이밍센터 회원들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드물지만 수영으로 지나는 구간도 있다. 배낭 속 내용물이 젖지 않도록 방수에 신경 써야 한다.
일반적인 계곡등반은 주의할 것이 많다. 여름이라 해도 계곡물은 무척 차갑다. 한여름에 10분 이상 물에 있으면 치아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춥다. 때문에 계곡등반은 저체온증이 오지 않도록 체온 조절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오늘은 건폭이 많아 자연스럽게 체온 조절이 되는 상황이다. 한 시간가량 올라서니 가늘었던 물줄기는 더욱 희미해지고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상류에 비교적 큰 폭포들이 있어 제대로 된 계곡등반 촬영을 기대했으나, 불안했던 예상대로 물이 없다.
물세례를 맞으며 등반을 이어가는 최종화씨.
구세주가 되어준 10m 폭포
“위쪽은 물이 없으니, 다시 내려가서 선녀탕 오른쪽으로 갈라진 10m 폭포로 가봅시다. 하류 쪽이라 분명 수량이 있을 겁니다.”
김규철 센터장의 제안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방향을 바꿔 내려간다. 한 시간 정도 내려서니 왼쪽의 등산로로 연결된다. 5분 정도 올라서니 우람한 폭포가 버티고 있다. 로프를 설치하고 톱로핑 방식으로 등반을 즐기는데, 본격적인 비의 방문이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등반을 마치고 로프를 정리하는 최종화, 안소영, 김규철씨(왼쪽부터). 등반은 언제나 즐겁다.
차가운 계곡 물줄기와 빗방울이 엉켜 조금 전까지 메말랐던 계곡을 빠르게 채우고 있다. 각자 한바탕 시원한 등반을 하고, 재빨리 하강해 등반을 종료한다. 장맛비가 곰골을 덮었다.
잠시나마 10m 폭포에서 세찬 물줄기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쉽지만 지금은 하산해야 한다. 서울에 가면 오늘 찍은 사진을 곧장 살펴봐야겠다. 정 안 되면 다음 주에 다시 곰골에 내려와야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김규철·최종화·안소영씨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그들의 환한 얼굴에 복잡했던 마음이 풀리고 너털웃음이 났다.

본 기사는 월간산 8월호에 수록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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