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500명 뽑고 싶다"는데 40명밖에 못 뽑는 서울대 AI 대학원

조선일보 2021. 8. 3.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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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인공지능(AI)에 기반한 구글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은 사건은 AI가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동력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 중국 등 세계 주요국들은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 AI 대학원 경우 우수 인재가 대거 몰리고 있는데도 대학 정원 규제 탓에 40명밖에 못뽑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의 차상균 원장이 본지 인터뷰에서 “훌륭한 학생들이 몰려오는데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때문에 놓치고 있다”며 “정원을 500명쯤으로 늘리고 싶은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야 인재를 키우는 이 대학원은 입학 경쟁률이 5~6대1을 웃돌지만 정원 규제에 묶여 한 해 석사 40명, 박사 15명밖에 못 뽑고 있다. 미국·중국 등은 AI 인재 육성에 총력전을 펼치는데 우리는 낡은 규제로 스스로 발목을 묶고 있다. 국가적 자해(自害)나 다름없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1982년 제정한 수도권정비법이 수도권 소재 대학의 총정원을 동결해놓았기 때문이다. 총정원 안에서 대학이 학과 간 정원을 조정하는 방법이 있지만 이는 정원이 축소될 학과 교수들의 반발에 막혀 진전되지 않고 있다. 차 원장은 “국가적으로 AI 인재가 부족한데 이게 말이 되냐”고 했다. 기가 막힌 현실이다.

AI는 차세대 산업은 물론 군사·안보 체계까지 송두리째 뒤바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다. 미래의 국가 판도를 좌우할 AI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주요국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MIT는 무려 1조원 규모 기금을 조성해 AI 대학을 설립했고, 일본은 대학·대학원생 50만명에게 AI를 가르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AI 인재 100만명’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바이두’ 한 기업만 3년간 AI 인력 10만명을 확보하겠다며 해외 전문가들을 무차별 스카우트하고 있다. 각국이 AI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거는데 우리만 지역 균형 발전 논리에 빠져 세계적 흐름에서 밀려나고 있다.

AI뿐 아니다. 한국 경제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도 만성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현장 투입 인력이 절대 부족하고 석·박사 인력은 30% 이상 모자란다고 호소하지만 대학의 관련 학과 정원은 15년 이상 묶여 왔다. 정부가 한 일이라곤 올해 고려대·연세대가 신설한 반도체 계약학과에 정원 외 신입생 80명을 뽑도록 해준 게 전부다. 그러면서 ‘K반도체 전략’ 같은 거창한 청사진만 쇼처럼 보여준다.

대학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학령 인구 감소로 5년 내 전국 대학의 25%가 문을 닫을 판인데, 학과 정원만 사수한다고 철밥통이 지켜지나.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대학이 무슨 존재 의미가 있나.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대학 교육은 낡은 체제 그대로 고립의 길을 걷고 있다. 교육부는 글로벌 인재 경쟁의 관점에서 낡은 대학 정원 규제를 대폭 수술하고, 대학들은 새로운 인재 수요에 맞춰 전면적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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