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깨지는 ‘동양인 넘사벽’

선우정 논설위원 2021. 8. 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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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수영 남자 50m 자유형 예선 경기. 한국 황선우가 경기를 마친 후 기록을 확인하고 있다./연합뉴스

메달을 못 따도 열광할 때가 있다. 올림픽 육상에서 거둔 한국 우상혁의 높이뛰기 4위와 중국 쑤빙톈의 100m 달리기 9초83 기록이다. 수영의 황선우 선수도 마찬가지다. 동양인은 신체 조건 때문에 몇몇 종목에선 근본적 열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100m 달리기와 높이뛰기가 특히 그랬다. 이 통념도 깨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쑤빙톈은 키 172㎝인 전형적 동양인 체형이지만 짧은 다리를 번개처럼 놀리며 폭발적으로 내달렸다. 높이뛰기는 균형 잡힌 장신이면서 근력도 탁월해야 한다. 동양인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상혁은 발 크기가 다른 ‘짝발’ 핸디캡까지 안고 메달 문턱까지 갔다.

육상 국가대표 우상혁이 지난 1일 오후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 경기에서 4위 2.35 한국신기록을 달성한 뒤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뉴시스

▶육상, 수영, 체조, 빙상 등은 백인과 흑인의 전유물로 통했다. 기록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 일본이 1928년 암스테르담올림픽에서 딴 첫 금메달은 육상 3단 멀리뛰기와 수영 200m 평영에서 나왔다. 일본은 1932년 LA올림픽에선 금 7개 중 5개를 수영에서 땄다. 백인 독무대로 통하는 남자 자유형 100m와 배영 100m 금메달까지 가져갔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마라톤 금과 동을 차지한 게 1936년이다.

▶동양인은 작고 약하니 육체를 바꿔야 한다는 인종 개량론이 19세기 말 일본에서 유행했다. 극단론자들은 국제결혼으로 서양인과 유전자를 섞자고 했다. 여자는 몰라도 인기 없는 일본 남자에겐 몽상에 불과했다. 체육과 육식으로 강해지자는 자강론(自强論)으로 바꿨다. 그러다 일본 우월주의로 빠지는 바람에 나라는 비참한 꼴을 당했지만 스포츠 경쟁력은 오래 이어졌다. 1960년 로마에서 1976년 몬트리올까지 다섯 차례 올림픽에서 남자 체조 단체전 금 5개를 일본이 독식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일본에 이어 중국과 한국 선수가 한계를 차례로 넘었다. 무게중심이 위에 있는 롱다리 서양인이 절대 유리하다는 수영 다이빙과 빙상 피겨스케이팅, 스키점프까지 한ㆍ중ㆍ일이 금메달을 나눴다. 육상 단거리도 중국 선수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110m 허들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 스켈레톤에서 한국 윤성빈이 우승한 것 역시 동양인이 깬 고정관념 중 하나였다. 이제는 백인과 흑인의 철옹성과 같았던 육상 100m와 높이뛰기까지 흔들리고 있다.

▶운동 능력은 체형과 근육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몇몇 종목에서 동양인의 운동 능력은 신체 구조 때문에 흑인, 백인보다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많은 동아시아 선수가 열세를 근육 단련과 과학적 훈련, 전술로 극복하면서 이른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을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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