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규의 백 스테이지]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더 큰 갈채를

최은규 클래식 음악 평론가 2021. 8.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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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음도 연주하지 않지만..
100여명 연주자 대표로 박수 한 몸에
기악곡 발전, 악단 규모 확대 따라
해석의 자유와 연주 책임 맡게 돼
음악성에 마음 얻는 소통 능력도 필요..
어쩌면 세상 가장 힘든 직업

“소리 하나 안 내는 지휘자가 왜 박수는 제일 많이 받는 거죠?”

부천시립예술단이 제3대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에 장윤성 서울대 교수를 위촉했다고 지난 5월 31일 밝혔다. 사진은 장윤성 부천필하모닉 상임지휘자./부천필하모닉

클래식 음악을 강의하러 다니다 보면 예상치 못한 질문을 받게 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대한 질문도 그중 하나다. 높은 지휘대에 선 채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향해 지휘봉을 흔드는 지휘자는 단 한 음도 연주하지 않지만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대표하여 청중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지휘자는 연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오케스트라의 훌륭한 연주를 이끌어내기 위해 악보를 철저히 연구하고 작품을 해석하며 리허설을 이끌어간다. 단지 하나의 악기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전체의 모든 악기 소리를 들으며 오케스트라가 조화로운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시종일관 연주자들과 긴밀하게 소통한다. 이토록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큰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물론 오랜 옛날부터 지휘자의 역할이 그토록 중요했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지휘는 오른발로 땅을 치며 박자를 맞추는 정도의 단순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중세의 지휘도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단선율로 노래되던 중세의 성가는 규칙적으로 강세가 주어지는 음악이 아니었으므로 성가대 지휘자는 선율의 흐름과 느낌을 전하기 위해 손과 팔을 이용한 간단한 동작만으로 합창을 이끌었다. 간혹 지휘봉이 사용되기는 했으나 오늘날의 지휘봉과 막대의 중간 정도 되는 크기였고 사용법도 단순했다.

15·16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되면 여러 성부로 된 다성음악이 보편화되고 음악적인 표현이 풍부해지면서 지휘법에도 융통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생생한 표현을 위해 템포를 늦추거나 빠르게 하는 일도 빈번했고 그만큼 지휘자의 음악 해석도 중요해졌다. 이제 지휘자는 다양한 지휘 동작을 구사하며 음악 작품을 해석해내는 자유를 얻게 됨과 동시에 연주에 대한 책임도 지게 되었다.

바로크 시대를 거쳐 18세기 후반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면 기악곡이 크게 발전하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초기의 오케스트라는 연주 인원이 많지 않았으므로 맨 앞자리의 바이올리니스트가 활을 휘두르며 지휘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오케스트라의 규모가 더욱 커지면서 지휘만 전담하는 전문 지휘자가 필요해졌다.

/일러스트=이철원

바로 그 시기,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은 날렵한 지휘봉을 들고 현란한 지휘를 선보이며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다.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멘델스존은 체계적인 오케스트라 리허설 시스템을 도입한 근대적인 지휘자이기도 하다. 현대의 오케스트라는 멘델스존이 활동하던 19세기 오케스트라보다 그 규모가 더 크고 음악도 복잡해진 만큼 한 오케스트라를 책임지는 상임지휘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상임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한 오케스트라의 흥망성쇠가 결정되기도 한다.

최근에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의 상임지휘자가 새로 정해지면서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난 5월에 KBS교향악단이 핀란드 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을 차기 음악감독으로 지명한 데 이어, 지난 6월 30일 롯데콘서트홀에서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장윤성의 취임 기념 공연이 있었다.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도 조만간 차기 예술감독을 발표할 예정이다.

오케스트라는 다소 특별한 조직이기에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상임지휘자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다. 오케스트라는 악기 연주에 있어서는 완전히 정통한 음악 전문가들의 집단이다. 사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지휘자가 없더라도 어느 정도 잘 맞춰서 연주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휘자는 단지 연주자들이 잘 맞춰서 연주할 수 있도록 지휘봉을 흔드는 사람이 아니다. 지휘자는 연주할 작품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많은 음악 전문가들을 음악적으로 설득하여 좋은 연주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악보를 철저히 연구하고 음악 작품을 깊이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개성이 다른 여러 음악가들이 화합할 수 있도록 연주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음악성과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소통 능력까지 갖추어야 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공연장에 가면 오케스트라 지휘자에게 더욱 힘찬 박수를 보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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