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37] 고향 무정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2021. 8. 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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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올라간 수온으로 인해 폐사 위기의 연어들. /컬럼비아 강 지킴이(Columbia Riverkeeper) 페이스북

1년 내내 에어컨 없이 살던 캐나다 밴쿠버 사람들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미국해양기상청(NOAA) 연구에 따르면, 라니냐(La Niña)로 데워진 태평양 서부의 뜨거운 공기가 바람에 실려 태평양 동부로 이동하며 북태평양 고기압에 갇혀 형성되는 거대한 열돔(heat dome)이 태평양 연안 북미 도시들을 뒤덮고 있다. 밴쿠버는 여름에도 온도가 그저 섭씨 20도 안팎을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최근에는 30도를 훌쩍 넘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시작해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거쳐 미국 워싱턴주와 오리건주를 가로지르며 장장 1930㎞를 흘러 태평양에 이르는 컬럼비아강은 세계 최대 연어 서식처였다. 그러나 미국과 캐나다가 이 강에 수력발전 댐을 무려 19개나 만들며 귀향하는 연어 수가 급감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강의 수온이 20도를 웃돌며 연어들의 몸에 붉은 병변이 생기고 곰팡이로 뒤덮여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강에서 부화한 연어 치어들은 바다로 나가 성장한 다음 자기가 태어난 강의 냄새를 따라 회귀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마치 38도 날씨에 마라톤 경주를 하는 꼴이다. 마라톤 선수는 기권할 수 있지만 연어에게는 선택 여지가 없다. 그저 죽기 살기로 강을 거스를 수밖에 없다. 물론 무사히 강 상류까지 도달한 연어들도 번식을 마치면 이내 몸이 흐물흐물 문드러지며 생을 마감한다. 번식을 하고 죽느냐 아니면 번식도 못 하고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매력적인 저음의 트로트 가수 오기택은 ‘고향 무정’에서 이렇게 읊조린다.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 있네/ ……바다에는 배만 떠 있고/ 어부들 노랫소리 멎은 지 오래일세.” 1966년에 나온 곡이건만 지금의 연어 신세를 어쩌면 이렇게 구구절절 노래하고 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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