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기록이잖아요, 4위의 아쉬움 쿨하게 떨쳤죠”
2m35㎝로 24년 만에 최고 기록
“즐기며 달렸고 가능성을 봤으니 후회 1도 없죠, 다시 뛸 힘 납니다”
“빨리 인정하면 행복도 빨리 찾아오니까요.”
올림픽에서 4등을 하고도 이렇게 ‘쿨’한 선수에게, 아쉬움을 묻는 건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전날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에서 간발의 차로 동메달을 놓친 우상혁(25)이 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경기장에선 아쉬움이 조금 있었나...? 그래도 빨리 인정했습니다. 한국 신기록도 세웠고, 2m37, 2m39에 도전도 해봤고, 말도 안 되게 넘을 뻔도 했습니다. 가능성을 봤기 때문에 후회는 단 ‘일(1)’도 남지 않았습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 일병답게 딱딱하면서도, 확신으로 가득한 목소리였다.
우상혁은 지난 1일 경기에서 2m35를 넘어 1997년 이진택의 2m34를 깨고 24년 만에 새 한국 기록을 작성했다. 마라톤을 빼고 한국 육상 사상 가장 높은 ‘4위’에도 올랐다. 어린 시절 사고로 오른발이 왼발보다 1cm 작은 ‘짝발’이지만 이겨냈다. 그보다 기록이 좋았던 3명과 불과 2cm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그가 중력을 거슬러 도쿄 국립경기장 공기를 갈랐던 순간은 이제 한국 육상의 역사로 남는다.
우상혁은 “아직도 꿈속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일일이 답장할 수 없을 만큼 축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게 뛰었기 때문인지 정작 내 경기가 잘 기억나지 않더라”며 “숙소에 돌아가 가장 먼저 경기 영상을 돌려봤다”고 했다. 그다음엔 컵라면을 먹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체중 조절을 위해 인스턴트 음식을 멀리해왔던 그는 긴 시간 가둬놓았던 욕망을 라면으로 풀었다. “양념되지 않은 음식만 먹어왔기 때문에 일부러 제일 매운 불닭볶음면을 골랐어요.”
그날 국민들이 우상혁에게 열광한 건 신기록이나 순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결과와 관계없이 환히 웃으며 흥겨워하는 모습이 ‘올림픽 정신’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관중을 대신해 앉아있던 타국 관계자와 자원봉사자의 박수를 유도했고, 쉴 새 없이 세리머니를 했다.
또 ‘레츠 고, 우(let’s go, woo)’ ‘점프 하이어(jump higher)’ ‘투서티세븐(2m37)’ 같은 주문을 쉬지 않고 읊었다. “원래 말이 좀 많고 떠드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라고 했다.
“준비가 됐고 확신이 들었다면 표출을 하자는 게 내 생각이다. 자신감을 드러내야 후회 없는 경기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준비된 사람이 자신감을 드러내는 건 자만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그는 경기장 밖에서도 올림픽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올림픽에선 참가자들끼리 배지를 교환하는 문화가 있다. 그의 AD카드 목줄엔 타국 선수들과 주고받은 배지 10여 개가 줄줄이 꽂혀 있었다. “첫 올림픽(2016년 리우) 땐 예민해서 방에만 있다 보니 아무 추억이 없었어요. 세계인의 축제에서 즐기지 못한 게 후회되고 창피했죠.” 이번엔 도쿄에 오자마자 선수촌 안을 휘젓고 다녔다. “(이렇게 대회를) 즐기면 경기도 더 잘 되는 거고, 못 하면 즐겼으니 후회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그는 ‘인생 목표’인 2m38을 겨냥한다. 자신의 키보다 50cm 높은 기록을 깨면 ‘50 클럽’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키가 188cm인 우상혁의 기준기록은 2m38이다. 그는 “꿈을 이룰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했다.
3등 아닌 4등을 한 우상혁은 ‘아슬아슬하게 실패한 이들’에게 이런 조언을 남기고 일어섰다. “도전과 도전 속에 긍정을 싣고 간다면, 실패를 쿨하게 떨쳐버린다면 다시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저도 그 힘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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