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불량식품

이용욱 논설위원 2021. 8. 2. 21:0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973년 5월 한 국민학교(초등학교) 앞에 불량식품을 먹으려고 모여든 아이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40대 후반 이상이라면 초등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쫀드기에 얽힌 추억이 없을 수 없다. 밀가루·옥수수분말·설탕·베이킹파우더 등 재료는 특별한 게 없지만, 겨울철 문방구나 교실의 연탄난로에서 구워먹던 쫀드기 맛은 다른 군것질거리가 흉내낼 수 없었다. 쫀드기의 여름철 맞수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파는 하드였다. 과일색소와 첨가제 등이 들어간 설탕물을 얼린 하드의 청량감은 포기할 수 없는 맛이었다. 비위생적, 세균 덩어리 등의 말이 어린이들 귀에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그러던 쫀드기나 하드는 1980년대 들어 불량식품으로 전락했다. 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과자와 아이스크림이 쏟아지면서 쫀드기·하드에 들어간 색소와 첨가물이 유해하다는 인식이 번졌다. ‘내 몸에 들어가는 음식’에 민감해질수록 불량식품이 설 자리는 좁아졌다. 유기농, 글루텐 프리, 콜레스테롤 제로,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등 식품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인증마크의 등장은 먹거리에 까다로워진 세태를 반영한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불량식품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지난달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저서 <선택할 자유>를 언급하며 “먹으면 병 걸리고 죽는 것이면 몰라도 없는 사람은 그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더 싸게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걸(퀄리티) 올려놓으면 50전짜리를 팔면서 위생 퀄리티는 5불짜리로 맞춰 (경제적 약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한 게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신문 인터뷰 기사에는 빠지고 유튜브 영상에 남아 있는 내용이다. 당장 ‘가난한 사람은 불량식품이라도 먹으라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온다.

다급해진 윤 전 총장은 2일 진의가 와전됐다며 “국민 건강과 직결되지 않는데 기준을 너무 높이고 단속하고 형사처벌까지 나아가는 것은 검찰권의 과도한 남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 건강과 직결되지 않는 식품은 없고, 먹거리에 대한 검증은 아무리 엄격해도 지나치지 않다. 결국 이 발언은 ‘120시간 노동’ ‘(대구) 민란’에 이어 그의 실언 목록에 오를 판이다. 본인과 지지자들은 과도한 비판이라고 주장하지만 대선 주자라면 이 정도 검증은 거쳐야 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