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가짜뉴스와 언론자유의 딜레마

김미경 2021. 8. 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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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언론에 최대 5배 상당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이려는 더불어민주당과 언론 길들이기라고 반대하는 야당의 대립이 점점 더 격화하고 있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을 추진하는 당위성은 '언론개혁'이다. 민주당은 특히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무기로 언론중재법 개정을 택했다. 민주당 미디어특위원장인 김용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보도에 따른 피해자는 인정되는 손해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의 배상을 언론사 등에 청구할 수 있고, 구체적인 손해액 산정이 어려운 경우 피해 정도 등을 종합해 5000만원 이상 1억원 이하의 범위에서 손해액을 정하도록 했다. 김 의원은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시행한 '2020년 언론수용자 조사' 결과를 인용해 언론중재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언론수용자 조사 중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 조사' 결과를 보면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가 24.6%로 가장 많았고, 2위는 '편파적기사'(22.3%), 3위는 속칭 '찌라시' 정보(15.9%) 등이었다. 언론의 정확하지 않은 정보 전달이 언론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허위조작·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로 언론중재위원회에 피해구제를 신청한 건수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보다 6배 늘었다"면서 "되돌릴 수 없는 정신적 물질적 피해 입은 국민은 절규하고 있다"고 언론중재법 개정을 주장했다. 윤 원내대표는 일각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이 언론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자 "언론 신뢰도가 높아지면 언론의 자유도 확대된다"면서 "허위보도가 줄어들면 국민의 자유 역시 커진다"고 말했다.

가짜뉴스 근절과 언론개혁의 당위성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이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언론 제작환경과 언론소비환경이 바뀌면서 언론은 공공재인 동시에 소비재의 성격이 강해졌다. 언론의 포털 종속이나 '어뷰징'(abusing)으로 대표되는 복제기사들은 언론의 중요한 개혁과제가 됐다. 언론은 꽤 오래전부터 충분히 언론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지 통렬한 반성을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언론중재법 개정의 핵심인 징벌적 손해배상이 언론개혁의 가장 이상적 방법론인지는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언론으로 인한 피해 구제 시스템을 다각도로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준사법적 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가 있다. 언론중재위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3000여건 상당의 조정신청을 받아 처리하고 있다. 지난해 피해구제율은 67.8%나 된다. 언론중재위 외에 명예훼손 등에 대한 형사처벌도 있다. 허위사실뿐만 아니라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까지도 처벌대상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공인이나 공공기관에 대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는 판례가 많은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공인과 공공기관도 명예훼손을 광범위하게 인정받고 있다. 한국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수위는 선진국 수준에 견줘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 2021년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180개 국가 중 42위였다.

언론중재법 개정을 바라보는 학계의 의견은 찬반이 갈리고 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는 지난 6월30일 열린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에 형사소송 말고도 경제적 배상을 강제해야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며 "가짜뉴스가 확증편향을 거쳐 더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모으는 구조로 돼있어 이를 제지하려면 민사소송을 겸해서 경제적 이익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짜뉴스' 판단권을 국가(또는 유사기관)가 행사하게 된다면 이는 국가가 국민들의 표현행위에 대해 가짜여부와 아울러 처벌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대 헌법에서 일반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넘게 될 우려가 크다"며 "나아가 '가짜뉴스'에 대한 일반적·학문적인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처벌규정을 새로 규정하거나 강화한다는 것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 의견을 냈다.

언론개혁은 언론의 자정기제와 언론의 자유를 양쪽 저울에 두고 세심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필요하다. 숫자로 밀어붙일 사안은 아니다.

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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