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경제 도약하려면, 생산성·구조개혁으로 성장 일궈야"
■폴 시어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펠로
수요 진작 필요하지만 공급 측면 재정정책 더 중요
높은 부채비율은 인플레로 이어져 증세 내몰릴 수도
디지털 경제 등 포스트코로나 적응 위해 교육 확대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수석이코노미스트와 부회장을 지낸 폴 시어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펠로가 “한국은 ‘재정’이라는 ‘마차’를 성장 앞에 두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말(성장)이 마차를 끌어야지 마차를 말 앞에 두면 안 된다는 의미로 한국 정부와 일부 정치권의 재정만능주의에 깊은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지난달 서울경제와의 창간 특별 인터뷰에서 “재정정책은 그것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의 재정과 통화정책은) 구조 개혁이나 다른 정부의 정책 시행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며 “해외 투자가들에 대해 매력을 높이는 작업에 집중해 준기축통화국인 일본·호주·캐나다·뉴질랜드와 같은 수준으로 올라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당장 효과를 내는 것처럼 보이는 재정 정책에만 기대지 말고 원론적이지만 노동 개혁과 생산성 향상,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그는 정부 재정 확대를 통한 수요 진작의 의미가 크다고 보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공급 측면(supply-side)의 정책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재정과 통화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수요를 끌어올리는 일을 해야 한다”면서도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공급 측면의 정책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또 포스트 코로나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 정부가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코로나19는 소비자의 행동과 업무 및 여행 패턴, 디지털 경제 등에 모두 영향을 남기기 때문에 경제의 수요와 공급 측면 모두에서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며 “경제가 최대한 빨리 완전고용 상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거시경제 정책과 함께 혁신을 촉진하고 노동과 자본의 유연하고 효율적인 배분을 돕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학생과 노동자에게 교육 및 훈련 기회를 추가로 제공하고 이들이 디지털 경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장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부채비율은 특정 숫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에 달하는 선진 국가 중 하나”라며 “코로나19 이전 최근 10년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3.3%로 미국(2.3%)이나 일본(1.2%)과 비교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은 더 이상 신흥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부채 관리 측면에서 한국은 지난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처럼 국제 금융시장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부채에 관한 생각은 바꿀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미 연방정부의 부채 비율이 GDP 대비 100%를 넘었다는 말에 “GDP 대비 부채 비율 100%는 정부가 빚을 한 번에 갚아야 한다고 할 때 1년치의 GDP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정부는 가계와 다르며 수 세대에 걸쳐 거의 무한대의 수명을 가진 정부에 1년은 긴 게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 국민들이 부채에 대한 시각과 대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미국도 높은 부채 비율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부채 수준이 높을 때의 정책적 이슈는 (부채를 갚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향후 어느 시점에 너무 많은 소비가 터져 나와 인플레이션이 야기될지 여부”라며 “그것은 통화와 재정 정책을 조여야 한다는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경우 정부는 세금을 올려야 할지 모른다. 부채를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열된 경제에서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오는 2023년에나 가능할 것으로 봤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공개된 점도표에 따르면 2023년에 두 차례 금리가 인상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당분간 연방기금금리 목표 범위를 올리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지 않고 그 사이 부정적인 경제 충격이 없어야 2023년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여전히 실업률은 코로나19 이전 최저치보다 3%포인트나 높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러면서 “인플레이션이라는 ‘지니’가 ‘호리병’을 빠져나왔지만 높은 수준으로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고 짚었다. 시장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작지 않지만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게 시어드 선임펠로의 생각이다
특히 연준이 금리 인상 전에 양적완화(QE)를 축소하기로 한 만큼 이를 먼저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연준은 금리 인상 전에 매달 800억 달러 규모의 국채와 400억 달러어치의 모기지담보부증권(MBS) 매입을 줄일 예정”이라며 “이를 위해 연준은 시장에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기 시작하는 테이퍼링을 결정하는 일이 가까워졌음을 시장에 알린 뒤 여러 번의 FOMC 회의를 거치면서 매입 규모를 축소해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고 나서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기 전까지 대차대조표를 일정 수준에서 유지할 것”이라며 “이 모든 과정이 문제 없이 진행되면 대차대조표 자체를 줄여나가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 우려가 큰 긴축발작에 관해서는 “2013년 당시에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며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화정책 전환 과정에서는 연준 의장과 연준에서 공개시장 조작을 담당하는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연준의 정책적 움직임을 고려할 때 뉴욕연은 총재를 제외하면 누구보다 연준 의장의 성명에 무게를 둬야 한다”고 밝혔다. QE의 방법과 시기를 두고 지역 연은 총재를 중심으로 여러 다른 목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연준 의장과 뉴욕연은 총재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의 국채 금리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10년물 국채 금리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 우려에도 현재 연 1.2%대다. 시어드 선임펠로는 “지난 10년 동안 연준의 기준금리는 평균 0.63%에 불과했으며 연준은 경제가 완전고용이면서 통화정책이 완전히 정상화할 경우 예상되는 중립금리를 약 2.5%로 보고 있다”며 “연준이 최소 2023년까지 기준금리를 제로에 가깝게 유지하고 대규모 국채를 매입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채 금리가 낮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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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김영필 특파원 susopa@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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