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장애인 탈시설 로드맵' 나왔다..20년간 단계적 지역사회 전환

노도현 기자 2021. 8. 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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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해 시설에서 나와 자립한 지적장애인 서지원씨(오른쪽)와 그의 어머니. 보건복지부 제공 영상 갈무리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고 좋아하는 음악을 매일 들을 수 있음.’

이토록 소박한 일상이 중증 지적장애인 서지원씨(30)에겐 한동안 허용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1년부터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9년간 살았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난해 ‘탈시설’을 결정했다. 현재 서씨는 서울시 장애인 지원주택에 산다. 한 달에 320시간(하루 약 11시간) 활동지원사가 방문해 그의 생활을 돕는다. 시설 퇴소 당시 저체중이었지만 식단관리 덕분에 10kg나 쪘다. 어머니 임현주씨는 “지원이가 표현은 못하지만, 이곳이 자기 집이고 자기가 주체가 되는 곳인지 은연 중에 알고 있다는 걸 제가 느낀다”고 말했다.

앞으로 20년간 국가 차원에서 이같은 탈시설 정책을 추진할 계획을 담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 2일 제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확정됐다. 2041년까지 매년 장애인 수 백명이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게 된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역사는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 제정 이후 40년에 달한다. 하지만 거주시설은 장애인 개개인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인권침해 문제도 빈번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집단감염에 취약하다는 한계까지 드러냈다. 전국의 장애인 거주시설은 1539개, 거주자는 2만9000명에 달한다. 10명 중 8명은 발달장애인이며 평균 거주 기간은 18.9년이다. 스웨덴, 캐나다 등 서구 국가들이 30~40년에 걸쳐 탈시설 정책을 추진해온 것과 정반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우선 정부는 내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통해 지원 기반을 다진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해 장애인의 주거 결정권과 자립에 대한 국가·지자체의 지원 책임을 명시할 방침이다. 2025년부터는 본격적인 탈시설 지원사업에 나선다. 처음 5년간 매년 740여명을 시작으로 한해 수 백명씩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면 2041년 전환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립 방식은 한 공간에서 장애인 3~4명이 지내는 공동형 주거와 혼자 사는 개별형 주거가 있다.

지원 대상을 발굴하기 위해 시설장애인을 대상으로 연 1회 자립지원 조사를 의무화한다. ‘체험홈’ 같은 중간단계 거주공간을 활용해 충분한 준비기회를 제공한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설치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지속하는 한편 임대계약, 금전관리, 각종 서비스 연계 등 생활 전반을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주거유지서비스 개발에도 나선다.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 자립기반을 쌓을 수 있도록 돕고 건강관리 지원도 확대한다.


시설의 문턱은 대폭 높인다. 의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을 제외한 장애인 거주시설은 신규 설치를 금지한다. 기존 거주시설은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최중증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거서비스 제공기관’ 또는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주거유지서비스’ 제공기관으로 탈바꿈한다. 신규 시설 입소도 24시간 전문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만 가능해진다. 2041년 시설에서 생활하는 장애인은 2000명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시설 역시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도록 1인 1실을 제공하는 등 운영방식을 개선해나간다. 장애인 학대 범죄가 발생한 시설은 즉시 폐쇄하는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도입한다.

탈시설 로드맵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지난달 27일 자녀를 시설에 보낸 중증 장애인 부모 100여명은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시설 폐쇄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었다. 시설이 아니면 돌봄 부담을 가족이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현실과 정부 정책을 향한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반면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최중증 장애인을 위한 시설 소규모화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아쉬운 지점”이라며 “지역사회에서 24시간 살아갈 수 있는 개인별 서비스를 만들면 되는 것이지 10~20년 후에도 시설 방식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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