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온건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물러난다..핵합의는 이제 어디로?

김윤나영 기자 2021. 8. 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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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미 온건파’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8년간의 임기를 마쳤다. 숙원사업이던 이란 핵합의(JCPOA)는 끝내 복원하지 못하고 물러나게 됐다. 대미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가 차기 대통령을 맡아 미국과 협상을 이어간다.

로하니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마지막 각료회의를 열고 “우리 정부의 성과가 완벽하지 않았음을 인정한다”면서 “잘못이 있었다면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고 이란 타스님통신이 전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2015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와 체결한 JCPOA가 “경제와 정치 모두에서 이란에 승리를 안겨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재로 석유와 은행 거래가 끊기면서 상황이 바뀌었다”면서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한 자릿수로 낮추려 노력했지만, 나라가 경제 전쟁에 직면했다”고 인정했다.

■학생운동가에서 외교의 달인으로

로하니 대통령은 학창시절 민주화 운동에 가담한 정치인이자 외교관이다. 1965년 17세의 나이에 전국을 순회하며 팔레비 왕조에 반대하는 연설을 하면서 ‘이란 혁명의 아버지’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주목을 받았다. 1972년 테헤란대 법대를 졸업하고 팔레비 왕조의 체포를 피해 프랑스로 도피했다가 호메이니와 함께 1979년 이란 민주화 혁명의 주역이 됐다.

정치권에 입문한 뒤에는 ‘외교의 달인’으로 통했다. 이란이 핵 개발을 막 시작하던 2002년 초대 핵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 2004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피하려고 우라늄 농축을 한시적으로 중단했고, 2005년엔 대미 강경파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당시 대통령과 대립하며 핵 협상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강수를 뒀다.

중도개혁파로 입지를 굳힌 로하니 대통령은 2013년 대선에서 50.9%를 받아 당선됐다. 서방 국가들의 경제 제재에 지친 유권자들이 국내 강경보수파를 심판한 결과다. 로하니 대통령은 중산층과 젊은층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으나, 보수 유권자가 우세한 이란에서 집권 기반이 탄탄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로하니 대통령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과 핵 협상 타결에 사활을 걸었고, 2015년 7월 JCPOA를 체결하는 결실을 봤다.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 사찰을 받는 대신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푸는 내용이 뼈대다.

이듬해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은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폈다. 2016년 이란의 경제 성장률은 13.4%에 달했다. 경제 성과를 토대로 로하니 대통령은 2017년 5월 57.1%를 받아 재선에 성공했다. 대미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 후보(38.5%)를 18.6%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대이란 제재가 부활했고 이란 경제성장률은 2016년 13.4%에서 2018년엔 마이너스 6%대로 곤두박질쳤다. 트럼프 정부가 지난해 1월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표적 살해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란에서는 대미 강경파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정부 출범 후인 지난 4월부터 핵합의 복원 협상을 재개했지만 결실을 보지는 못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바마 시절보다 이란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고, JCPOA 재협상에 대한 이란 내 대미 강경파들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양쪽에서 낀 처지가 된 것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마지막 각료회의에서 “국가 통합을 위해 비판에 대한 대응을 자제했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강경보수 라이시, 핵합의 복원할까?

로하니 대통령의 뒤는 대선 재수생인 라이시 신임 대통령이 잇는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대비된다. 학생운동가 출신인 로하니 대통령과 달리, 라이시 당선자는 공안 검사 출신이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사이가 껄끄럽지만, 강경보수파인 라이시는 하메네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라이시는 오는 5일 취임식을 열고 차기 JCPOA 협상도 이끌어간다. 그러나 이란의 정권교체로 JCPOA 복원 협상 전망도 어두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측 협상 대표인 로버트 말리 이란 주재 미국 특사는 “다음 회의에서 이란이 비현실적인 요구를 하고 돌아갈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라이시가 기존 이란 협상팀을 유지할지 아니면 자신의 충성파로 교체할지도 불분명하다.

JCPOA 복원이 실패하면 미국과 이란 모두 잃을 게 많다. 바이든 대통령은 JCPOA 복원을 중동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협상이 깨지면 트럼프 정부가 망가뜨린 미국의 외교를 복원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구상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이란은 최근 경제 위기, 가뭄, 잦은 정전 사태로 반정부 시위에 맞닥뜨리고 있다. 이란도 미국의 제재 해제가 간절한 상황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적대 관계는 또 다른 변수다.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측 유조선이 이란산 드론의 공격을 받아 선원 2명이 숨지는 일이 생겼다. 이란은 부인했으나 이스라엘, 미국, 영국은 배후로 이란을 지목하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매체 하레츠는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당초 의도와 달리 대이란 제재를 강화하도록 설득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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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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