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코로나19와 학교, 그리고 부모 된 죄

이순혁 2021. 8. 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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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이순혁 전국부장

“아빠, 주말에는 나도 좀 쉬자.”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내미가 지난해부터 가끔 하는 말이다. 주말에 뒷산 산책이나, 바람이라도 쐬러 가자고 할라치면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답이다. 그도 그럴 법한 게, 아들아이는 주중엔 매일 아침 8시30분쯤 집 근처 교회 부설 종합보습학원으로 등원했다가, 저녁 7시 전후해 하원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입시에 주안점을 둔 곳은 아닌지라 피아노나 미술 등 예체능 활동에, 중간중간 학교 줌 수업도 듣고, 휴식 시간과 간식 시간도 넉넉하단다. 하지만 하루 10시간 이상을 한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 자체가 11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삶의 무게이리라.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보습학원은 학교에서 하교한 뒤 몇 시간 보내다 오는 곳이니. 그러던 게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지금이야 방학 기간이지만) 방역을 이유로 학교가 수시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초기에야 엄마나 아빠가 돌봄휴가를 내기도 했지만, 이젠 학교가 문을 닫으면 보습학원에서 온종일 생활은 당연한 일상이 됐다.

이런 나날이 반복될수록 아이에게 미안함만큼이나 가슴 한쪽의 의구심도 커져만 갔다. 코로나19 유행 앞에서 왜 학교는 죄다 문을 걸어 잠그고, 사설 보습학원은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학생을 보호·수용해야 할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학교와 보습학원을 구분해 찾아가기라도 하는 걸까?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그나마 나았다. 날마다 등교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일이 있었다.

두어달 전 금요일, 오전 10시께 모르는 전화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 아버님이시죠? 저 ○○이 담임선생님이에요. 어머님이 연락이 안 돼 전화드렸어요. ○○이가 열이 나서 빨리 집으로 데려가셔야겠어요.”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랐지만, 바로 나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완곡한 상황 설명에 돌아오는 선생님 말씀.

“그럼 누구든 빨리 보내주세요. 아이 봐주시는 분이나, 할머니 없나요? 지금 ○○이는 보건실에 혼자 있으니, 여하튼 최대한 빨리 데려가 주세요.”

회의 중이어서 통화가 힘들다는 아이 엄마와 문자로 대책을 논의해, 저녁에 아이들을 봐주는 시터 이모님과 처가에 에스오에스(SOS)를 보냈다. 하지만 통화가 안 되거나 멀리 나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보건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딸아이에게 죄스러운 마음에 하던 일을 후다닥 마치고 두어 시간 뒤 ‘오후 재택’을 하기로 하고 회사를 나섰다. 마침 뒤늦게 연락이 된 시터 이모님이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나오는 중이었다.

“다음주 월요일에 등교시키려면 의사한테 확인증 받아오라고….”

시터 이모님의 설명에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집에 온 거야?”라며 좋아하는 천진난만하기만 한 딸아이 손을 잡고 집 근처 소아청소년과를 찾았다. 쉼 없이 재잘대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체온을 잰 의사 선생님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37.2도인데, 조금만 뛰어도 이 정도는 나와요. (아이를 병원에) 왜 보낸 거죠?”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보는 의사 선생님에게, 나도 모르게 “저도 정말 궁금하네요”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던 의사 선생님이 발급한 확인증을 가지고 집으로 향하는 길…. 아이 엄마와 아빠, 엄마와 아빠의 직장, 아이 외가, 시터 이모님의 금요일 오전을 뒤흔들어놓은 사태의 결말치곤 허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쪽 사정은 모르겠고 여기서는 뺄 테니 아쉬우면 어서 데려가라’는 통보에 아무 말 못 하고 마는 게 부모 된 죄구나, 라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등교수업이 중지되기 시작했던 1년여 전 기억도 떠올랐다. 등교수업 중지 뒤 아들아이는 학교에서 유튜브에 올라 있는 <교육방송>(EBS) 프로그램을 보란 안내를 받은 게 고작이었지만, 사립학교에 다니는 아들 친구는 온라인 줌 수업으로 매일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그때도 비대면 수업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리라,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유튜브 시청과 줌 수업 사이 간극은 몇달이 지나도 좁혀지지 않았다.

‘무리해서라도 사립 초등학교를 보내야 했던 걸까’란 후회와 반성이 갈수록 커가는 요즘이다.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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