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가장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

한겨레21 2021. 8. 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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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로드]쓰레기 무단 투기에 엄청난 벌금 물리고 "날리지 않도록" 묶기 위해 과도한 비닐 사용, 저임금 이주노동자에게 재활용 분리 맡겨
비닐봉지가 가득한 마트 모습
지금까지 국내 쓰레기의 여정을 쫓아왔다. 이제 지구촌으로 눈을 넓혀보자. 2018년 세계은행 보고서를 보면, 인류의 쓰레기 배출량이 연간 20억t이 넘는다. 올림픽 경기 기준 수영장 80만 개를 채우고도 남는다. 지금 추세라면 2050년에는 34억t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재활용되는 폐기물은 전체의 16%에 그친다. 쓰레기 문제에서도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부자 나라가 더 많이 버리고 가난한 나라가 더 큰 위협에 노출된다. 독일·미국·싱가포르·오스트레일리아·인도네시아·일본·타이·터키·홍콩 9개국에 더해, 우주폐기물까지 인간의 ‘쓰레기 발자국’ 실태와 그 대응 방안을 살펴본다._편집자주

쓰레기봉투가 다 떨어졌다. 그럼 마트에 가서 필요한 걸 몇 개 사면 된다. 계산대 직원이 채소, 생선, 달걀, 음료수, 치약을 각각 다른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아, 달걀은 깨질 수 있다며 봉지 하나를 덧씌워준다. 봉지 하나에 다 담길 만한 양인데 기어이 봉지 여섯 개에 나눠 담아주고, 난 그걸 그대로 받아온다. 봉짓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

음료병이나 캔을 넣으면 할인쿠폰을 주는 자판기.

서울시 환경미화원 6천 명, 싱가포르 4만7천 명

집에 와서 반찬을 준비하고 남은 음식물쓰레기를 좀 전에 받아온 비닐봉지에 담는다. 청소하면서 나온 쓰레기도, 더는 못 입는 옷가지도 같은 비닐봉지에 담는다. 그런 뒤 아파트 각 층에 설치된 쓰레기 투입구에 버린다. 한국에선 1990년대 초까지 가능했던 일이지만, 2021년 싱가포르에선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모습 이다.

싱가포르 하면 동남아시아에서 제일 잘사는 선진국으로 진작에 세계화되고 수많은 규율 속에 청결한 환경으로 유명한데, 쓰레기 버리기는 왜 아직 이럴까? 그 이유는 그 방식이 싱가포르를 가장 깨끗하게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적도에 위치한 섬나라 싱가포르는 특유의 덥고 습한 날씨 때문에 쓰레기가 방치되면 악취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온갖 질병과 해충의 온상이 된다.

초대 총리 리콴유는 1968년 싱가포르를 깨끗한 도시로 만드는 것이 질병 퇴치와 삶의 질 향상,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 유치에 큰 구실을 한다며 ‘깨끗한 싱가포르 만들기’(Keep Singapore Clean)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후 대대적인 청소와 함께 거리 곳곳에 쓰레기통이 놓였고, 환경미화원이 대폭 증원됐다. 오늘날 580만 인구의 싱가포르에서 청소만 하는 인원이 무려 5만7천 명이다. 서울시 환경미화원이 6천 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쓰레기 무단 투기에 엄청난 벌금을 부과한다. 처음 적발되면 최대 2천싱가포르달러(약 170만원), 두 번째 적발은 최대 4천달러(약 340만원), 이후에는 최대 1만달러(약 850만원)를 벌금으로 낼 수도 있다.

거리를 돌아다니면 어디서든 쉽게 쓰레기통을 볼 수 있다. 시내에는 어림잡아 50m에 하나씩, 변두리 주택가에도 100m에 하나씩 있을 정도다. 벌금이 무섭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쓰레기통이 많으니 굳이 무단 투기를 할 이유가 없다. 단위면적당 쓰레기통 수를 집계한 게 있다면 1위는 분명 싱가포르일 터. 거리가 깨끗할 수밖에 없다.

전자제품 폐기물 수거함.

쓰레기 태우는 열로 전력 3% 만들어내

깨끗한 도시가 최우선 과제이다보니 분리배출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맞벌이가 일반적인 싱가포르 가정에서 재활용품 분리배출을 의무화하면 시간 내서 나누고 재활용하는 대신, 다들 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가서 공용쓰레기통에 버릴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지저분해지는 걸 감수하며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없앨 정부도 아니다. 시민에게 요구하는 건 단 하나, 쓰레기가 날리지 않게 잘 묶어서 지정된 쓰레기통에 버리라는 것. 그러다보니 비닐봉지 사용이 과하다.

인구의 30% 가까이 되는 단기체류 이주노동자와 매년 인구의 4배 넘게 찾아오는 관광객에게 분리배출을 강제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재활용품 분리배출 시스템을 만들어 교육과 홍보를 하고, 지속적으로 감독하기보다 최소한의 협조만 구하고 재활용 자체는 이주노동자에게 일괄적으로 맡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수 있다. 인도,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에서 저임금 이주노동자를 지속해서 공급받을 수 있는 싱가포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수거된 쓰레기는 소각장에 모인다. 이주노동자가 재활용할 수 있는 것을 골라내고 나머지는 모두 태운다. 쓰레기 소각장은 발전소 구실도 하는데, 쓰레기를 태울 때 발생하는 열로 싱가포르 전체 전력의 3% 정도를 만들어낸다. 태우고 남은 재와 태우지 못하는 쓰레기를 모아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 옆의 바다에 묻는다. 그 위에 복토(흙을 덮음)해 섬의 면적을 넓힌다. 서울보다 조금 큰 섬나라 싱가포르의 국토 면적은 이렇게 매년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2021년 7월14일 싱가포르의 한 건물 앞에 줄줄이 놓인 쓰레기통을 이주노동자가 치우고 있다.

한 통에 모든 재활용품을

여기까지만 보면 싱가포르는 쓰레기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나 싶겠지만, 당연히 그렇지는 않다. 여기도 분리배출을 한다.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거주지 곳곳에 재활용품 분리수거함이 설치됐다. 특이한 점은 종이, 빈 병, 헌 옷을 모두 한 통에 버리는 단순한 방식이라 분리배출에 대한 거부감이나 불편을 최소화했다는 것.

시내에도 다양한 형태의 분리수거함이 많이 설치되고 있다. 쓰레기 가운데 전자폐기물이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면서 전자폐기물만을 따로 모으는 수거함이 별도로 설치된다. 팔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수거함도 있다. 음식물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다만 이 모든 분리배출이 권장 사항이지 의무 사항은 아니라서 분리배출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아니다. 스트레스 대신 돈을 주기도 한다. 싱가포르 환경부는 대형마트 체인과 손잡고 캔이나 음료병을 넣으면 개수에 따라 마트 할인쿠폰으로 보상해주는 자판기를 50개 정도 운영하고 있다. 2017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시작한 ‘BYO’(Bring Your Own·당신의 장바구니를 가져오세요) 프로젝트는 쇼핑할 때 제품 용기를 가지고 오거나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를 쓰는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싱가포르 정부는 쓰레기 처리 문제에서 시민들에게는 관대하지만, 기업이나 생산자에게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유도한다. 2019년 싱가포르 의회는 ‘자원 지속가능성 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은 2025년까지 제품을 생산 혹은 수입하는 기업이 제품과 포장재로 발생한 폐기물의 수거와 재활용까지 책임지도록 법규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발생한 쓰레기를 분류해서 재활용하는 것보다 생산 단계에서 불필요한 포장재를 줄이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판단이다.

재활용보다 포장재 줄이기가 효과적

재활용을 위한 쓰레기 분리배출보다는 깨끗한 싱가포르가 우선이라는 방침은 앞으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 분리배출과 재활용에 대한 책임은 생산자와 정부가 떠안고 시민에게는 최소한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공무원 사회인 싱가포르의 특징이다. 이런 나라에서 살다보니 쓰레기 버리는 게 편해서 좋긴 한데, 엄청나게 쓰이는 비닐봉지 때문에 마음은 편하지 않다. 싱가포르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썩는 친환경 비닐봉지가 저렴하게 보급됐으면 한다.

싱가포르=글·사진 이봉렬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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