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쌍둥이 大國’ 한국

김태훈 논설위원 2021. 8. 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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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에선 쌍둥이가 태어나면 한 여자가 두 남자와 관계해 낳은 부정(不貞)의 증거라 여겼다. 이런 오해가 이야기로 만들어진 게 헤라클레스 신화다. 제우스는 암피트리온이 집을 비우자 그로 변신해 아내를 속이고 동침했다. 이튿날 진짜 암피트리온이 돌아와 동침하는 바람에 제우스의 아들 헤라클레스와 암피트리온의 아들 이피클레스가 함께 태어났다. 우리나라엔 전생의 부부가 남매 쌍둥이로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었다. 박완서 소설 ‘도시의 흉년’에는 쌍둥이 남매의 할머니가 손녀를 손자 앞날 망칠 애라며 괄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는 이를 통해 쌍둥이 임신에 무지했던 시절을 비판했다.

일러스트=김도원 화백

▶우리는 다산을 축복으로 여기는 전통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에 세쌍둥이를 낳으면 나라가 출산 축하금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1977년 태어난 네쌍둥이는 TV 광고에도 출연했다. 1989년 인천에서 태어난 네쌍둥이가 간호대에 진학하자 아이들을 받았던 병원이 등록금 대주고, 졸업하자 간호사로 채용한 일도 있다.

▶출생아가 급감하면서 이젠 네쌍둥이가 아니어도 쌍둥이가 태어나면 온 사회가 반색한다. 임신 출산 바우처, 출산 휴가, 산후 도우미 지원 등 나라의 지원도 한 아이를 임신했을 때보다 곱절 가까이 많다.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의 노고를 생각하면 당연히 해야 할 지원이기도 하다.

▶쌍둥이 출산 비율이 지난 40년 사이 5배 가까이 급증했다고 한다. 1981년 출생아 1000명당 5쌍이던 것이 2019년엔 22.5쌍으로 늘었다. 전 세계 쌍둥이 출생 비율이 1000명당 12쌍이니 우리는 세계 평균의 두 배나 되는 쌍둥이 대국(大國)인 셈이다. 만혼에다 첫 임신이 늦어지면서 난임이 늘고 있다. 난임 부부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지면 쌍둥이 확률이 높아진다. 전 같으면 자식 복 없다고 포기했겠지만 요즘은 부부들이 의학의 도움을 받아 적극적으로 나서며 생긴 변화다. 이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헤라클레스 신화가 쌍둥이에 대한 무지만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정성껏 키웠던 당시 사회상도 전한다. 암피트리온은 헤라클레스에게 승마와 전차를 가르쳤고, 현자 케이론은 교육을 맡았다. 활쏘기와 무기 다루는 법도 전수했다. 덕분에 헤라클레스는 쾌락을 멀리하고 미덕을 소중히 여기는 어른이 됐다. 2000년 한 해 63만명이던 신생아가 2019년부터 30만명 밑으로 떨어졌다. 아이 하나하나가 가뭄에 쏟아진 비처럼 소중하다. 그러니 쌍둥이가 태어나면 더욱 반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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