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의미는

정재영 2021. 8. 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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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태도 변화 일단 긍정적이지만
비핵화 의지보다 '양보' 노린 것
美, 한·미연합훈련 축소에 부정적
북·미대화 재개 등 향후 추이 촉각

‘북한은 왜 이 시점에 통신연락선 복원에 동의했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새로운 대북정책 검토를 마친 뒤에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재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남북이 13개월 만에 통신연락선을 복원하자 미 조야의 시선이 북한 측에 쏠린다. 문재인정부가 연락선 복원 등을 수개월 전부터 북측에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복원 결정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북한이 남한과의 연락선을 복원한 것은 긍정적 신호이지만 이번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물론, 북·미 간 대화 재개를 비롯해 비핵화 협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먼저 북한의 심각한 경제 상황이 변화를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북한이 통신연락선을 복구한 것은 심각한 식량난으로 한국과 중국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중국과의 무역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연락선 복원에 합의했다는 평가는 드물다. 오히려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태도를 잠시 바꾼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연락선 복원 결정 직후 강경한 어조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대한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북한이 원하는 양보는 연합훈련 축소 내지 취소일 수 있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문재인정부도 이에 긍정적 반응을 수차례 밝혀왔지만 문제는 바이든 정부가 이에 적극 호응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 조정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한 채 “연합훈련은 쌍방의 결정이며 모든 결정은 상호 합의에 따라 이뤄질 것”이라고만 밝혔다. 한·미 연합훈련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첫 정상회담 이후 줄곧 중단되거나 축소된 형태로 실시됐지만, 바이든 정부는 연합훈련 축소 등에 부정적이다. 미 조야에서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먼저 ‘대가’를 지불하지 말아야 한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북한이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남한의 정치 상황을 고려했다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남한의 보수정권보다 진보정권을 선호해왔는데, 내년 대선 결과에 따라서는 더 나은 기회를 상실할 수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통신연락선 복원에 대해 ‘남북이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위한 출발선에 다시 섰다’는 정부의 관측은 섣부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가까운 미래에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없어 보이는 데다, 연락선 복원은 그저 작은 문이 다시 열린 것일 뿐이라서다. 미국의 전임 행정부들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정상회담까지 했지만 비핵화의 정의조차 합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북한이 통신선 복원 이후 남한과 어떤 주제로, 얼마나 자주 대화에 나설지 먼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마크 램버트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는 최근 주한미군전우회(KDVA)와 한미동맹재단(KUSAF)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면서 특히 이를 다음달 예정된 연합군사훈련 축소 등과 섣불리 연계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통일부가 연락선 복원의 후속조치로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협력 물자 반출 승인을 재개한 데 대한 미 조야의 기류도 복잡하다. 문재인정부는 수차례 코로나19 방역 물품 등에 대한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이 이를 거부해왔다. 이번에는 미국이 북한에 ‘올리브 가지’를 건네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미국은 어떤 인도적 지원에도 열려 있지만 “북한에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을 초래한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다”는 입장이다.

미 국무부는 정부의 인도주의 지원 등 방침에 대해 “우리는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남북 관여와 남북 통신선 복구를 환영한다”면서도 인도주의 지원에 대한 한·미 간 협의와 관련한 질문에는 즉답하지 않았다. 통신연락선 복원 이후 이어지는 한·미 양국의 고위급 소통이 이견을 좁히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길 바란다.

정재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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