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 3만6000km 근적외선 카메라..'산불의 구원자' 지구 밖에 띄운다

이정호 기자 2021. 8. 1.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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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
4년 내 최첨단 산불 감지기
정지궤도 위성에 장착 계획
AI, 확산 속도·방향도 예측
지난달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유카이아 계곡에서 소방관 브라이언 클랫이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은 최근 인공위성에 고성능 적외선 감지기를 달아 산불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장비는 24시간 산불감시원 역할을 한다. AP연합뉴스

미국 애리조나주의 드넓은 들판에 선 화재 진압대장 에릭 마시(조슈 브롤린)의 시야에 수㎞ 전방에서 천천히 확산하는 불길이 들어온다. 에릭이 이끄는 팀은 산이나 들에서 발생하는 불을 상대하는 특수 야외 소방대다. 불이 먹이로 삼을 만한 나무를 제거해 방화선을 구축하는 것이 임무다. 그런데 분명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산불이 강한 바람을 타며 순식간에 에릭 대장과 대원들을 향해 달려든다. 바람의 가공할 속도는 대피할 시간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들은 불의 기세를 피하기 위해 이불처럼 생긴 얇은 금속을 뒤집어쓰고 지면에 엎드린다. 하지만 결국 현장에 있던 19명 전원이 사망한다. 2013년 미국에서 발생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온리 더 브레이브>이다.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불씨,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 탓에 산불의 발생 여부와 진행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운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 4년 뒤 ‘산불 감지기’ 우주 발사

하지만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연구진은 지난달 말 학교 매체 버클리 뉴스를 통해 향후 4년 안에 지구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에 첨단 산불 감지기를 장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지기의 핵심 장비는 ‘고성능 근적외선 카메라’이다. 적외선은 열을 뜻한다. 인공위성에서 지상으로 카메라를 설치해 산불로 생긴 열을 감지해 찍겠다는 의도다. 지금도 인공위성은 화재의 확산 양상을 확인하고, 잿더미로 변한 지역을 가려내는 데 사용된다. 연구진의 이번 감지기는 불에 대한 민감도를 기존보다 한층 끌어올리도록 고안됐다.

연구진은 감지기의 설치 위치도 특별한 곳으로 정했다. 고도 약 3만6000㎞를 도는 정지궤도 위성의 동체다. 정지궤도 위성은 지구 자전 속도와 똑같이 움직인다. 하늘에 꽂힌 압정처럼 지상의 특정 지점을 24시간 쳐다본다는 얘기다. 자지도, 쉬지도 않는 산불감시원이 생기는 셈이다.

연구진이 기대하는 산불 감지 속도는 발화 뒤 1~5분이다. 산불은 발생 이후 20분 안에 감지하지 못하면 불의 기세가 커져 초기 진화가 어렵다. 현재 미국에서 산불이 가장 많이 생기는 곳 가운데 하나인 캘리포니아의 진화 당국은 하루에 한 번 비행기를 띄워 산불 여부를 확인한다. 연구진 기술이 실용화되면 산불 감시망이 훨씬 촘촘해지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연구진이 개발한 화재 감지기의 시험가동 장면. 네모 안에 약한 연기가 보인다. 인공지능(AI)을 사용해 화재의 감지 속도를 높이고 확산 방향과 속도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UC버클리 제공

■ AI로 화재 방향·속도까지 예측

연구진의 장비에는 인공지능(AI)도 들어간다. 적외선 감지기가 영상을 잡아내면 즉각 ‘머신 러닝’, 즉 기계학습 기능이 작동한다. 컴퓨터에 자료를 준 뒤 스스로 새 지식을 얻게 해 최적의 진화 방법을 끌어내는 것이다. AI는 이를 통해 산불의 발생 사실을 재빨리 알아낼 뿐만 아니라 확산 방향과 속도도 예측할 수 있다. 불꽃의 길이와 기하학적 구조를 판별한 뒤 불이 난 곳 주변의 풍속·습도 자료와 결합해 산불이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빨리 번질지 분석한다. 소방대원들을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 특히 바람 때문에 산불 피해가 크게 발생한 사례는 국내에도 많다. 2005년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 소실을 불렀던 산불이 대표적이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낙산사를 태운 산불도 일반적으로 해당 시기에 불던 바람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면서 크게 번졌다”고 말했다. 이런 예기치 못한 일에 대응할 방법이 생기는 셈이다.

■ ‘불쏘시개 숲’ 대응책 기대

미국 과학계가 산불 진화 역량을 높이려는 건 피해가 말 그대로 막대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 연구진에 따르면 2018년 한 해에만 캘리포니아 산불로 1500억달러(173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더 큰 문제는 산불이 발생할 만한 환경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온난화는 폭염을 일상으로 만들었다. 작은 불씨에도 쉽게 타오르는 불쏘시개처럼 산과 들이 바짝 마르고 있다. 이번 연구를 이끈 UC버클리 우주과학연구소 소속의 칼 페니패커 연구원은 버클리 뉴스를 통해 “지난 30년간 가뭄이 심화하고 있다”며 “이번 기술로 소방대원들이 산불에 더 빠르게 대처할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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