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 잉게 숄 [이인영의 내 인생의 책 ①]
[경향신문]
군사독재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마치 태풍의 눈 속에 있기라도 한 듯이 비인간적, 반민주적 현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살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비판적 지성’에 눈을 뜨고 바라본 세상은 무조건 정의롭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그즈음 마주한 잉게 숄의 실화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아미자)은 어쩌면 내가 처음 읽은 책다운 책이었다. 거대한 억압과 폭력 앞에서도 양심과 신념에 따라 진실을 전파했던 아름다운 청년들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는 친동생들이자 나치 독재에 저항해 자유와 인권을 지키다가 목숨을 잃은 한스 숄, 소피 숄 남매의 투쟁을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한스 숄은 나치의 악행에 분노했고,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백장미단’을 조직했다. 이들은 저항 메시지를 담은 전단을 통해 어떤 물리적 폭력도 없이 거악에 맞섰지만 결국 체포돼 처형됐다. 그 후 5월, <광주백서>를 읽었다. <광주백서>는 <아미자>보다 더 치열한 또 하나의 <아미자>였다.
그들이 생명까지 바쳐 얻고자 했던 자유란 무슨 의미일까? 특정 지배자들만 전유하는 권리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 뿌리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누구든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휴머니즘’에 기인하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애에 바탕을 둔 공존과 평화야말로 이들이 말한 자유 실현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이의 존엄’을 향한 백장미단의 숭고한 투쟁과 목소리는, 심지어 나를 폭압하고 있는 대상까지도 포용하는 것이었다. 놀랍도록 위대한 일이다. 한스 숄은 단두대 앞에서 한마디의 말을 남긴다. “자유여, 영원하라!” 이 외침과 그것을 기억하는 자들을 통해, 참된 자유는 지금도 쉼 없이 피어나고 있다. 조금 더뎌도 우리는, 나는 이 길을 간다.
이인영 |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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