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덜 쓰고 기계화 덜 되고..북한 논은 양서류의 보고더군요"

조홍섭 2021. 8. 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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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중국 난징 임업대 아마엘 볼체 교수
아마엘 볼체(오른쪽 둘째) 교수가 북한 나진 지역 조사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지원한 독일 한스자이델재단 등의 깃발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촬영은 나일 무어스 박사가 했다. 사진 새와 생명의 터 제공

“양서류는 남북한 공동연구를 통해 지식의 빈 틈을 메우고 서로의 이해를 돕는 ‘생태 대사’가 될 수 있습니다.”

아마엘 볼체(33) 중국 난징 임업대 교수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공부하고 일하는 세계인이자 한국 연구자다. 남한의 습지를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멸종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 등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국과 생태가 비슷하지만 연구자들에게 미지의 땅으로 남아있는 북한 지역의 개구리와 도롱뇽 등을 연구하며 2016~19년 3차례에 걸쳐 북한의 습지를 현지 조사했다. 이를 바탕으로 최근 다른 남·북한과 중국·러시아 등의 연구자들과 함께 북한의 양서류 분포와 보전 실태를 밝힌 논문을 국제 과학저널 <애니멀>(동물)에 발표했다. 그를 지난 30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2016년부터 3년간 문덕·나진·금야 조사
남북·중·러시아 공동 ‘북한 양서류’ 논문
“보안 민감해 심야조사만 빼고 적극 협조”

마다가스카르 태생 프랑스인·한국 박사
수원청개구리 등 양서류 논문만 100여편
“연구로 돈 벌 수 없지만 좋아하는 일 행복”

아마엘 볼체(맨 왼쪽) 교수가 북한의 농경 지대에서 현지 관계자들과 함께 양서류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사진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남·북 관계가 좋을 때도 북한에서 조사활동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대상 지역이 보안에 민감한 해안 저지대이면 말할 것도 없다. “어떤 곳에서는 사진 찍는 것만 허용됐어요. 하지만 다음 장소에선 사진은 못 찍고 채집을 할 수 있었죠. 밤중에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야행성이고 종종 울음소리로 조사하는) 양서류 연구자한테는 큰 문제였지요. 저는 보통 오후 5시에서 이튿날 새벽 3시까지 조사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는 인내심 있게 조사를 진행했다. 이 사업은 독일 한스자이델재단이 북한 당국의 협조를 얻어 2015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북한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에 관한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그는 북한 국토환경보호성의 안내로 청천강 하구인 평안남도 문덕, 동해안 최북단인 나선, 함경남도 금야 지역을 3차례에 걸쳐 현지조사하고 주민과 간담회를 열었다. 현지조사에는 남한의 습지에서 조류조사와 보전활동을 해온 나일 무어스 ‘새와 생명의 터’ 대표와 베른하르트 셀리거 한스자이델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등도 참여했다.

특히 그는 2019년 평양에서 북한의 관계 당국과 전문가가 모두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 국제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바로 그날 한국 국회에서도 ‘한국 농업경관에서의 양서류 보전 방안’이란 토론회가 열렸는데 제가 화상으로 발제했어요. 농업 습지를 지켜 양서류를 보전하자는 같은 얘기를 서울과 평양에서 2시간 간격으로 했던 거죠.”

그가 주저자인 논문의 핵심 요지도 북한의 양서류를 보전하는 데 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논 등 저지대 습지에서 확인된 양서류는 모두 11종인데 이는 북부 산악지대에서보다 2배 많아요. 현지조사한 모든 논에서 양서류가 살기에 적합했습니다.” 그는 “북한의 농업 습지에 사는 양서류가 당장 위협에 놓이지 않는 이유는 광범한 논 경관이 유지되는 데다 농약과 비료 사용량이 적고 농업기계화가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논문에서 분석했다. 대조적으로 남한에서 수원청개구리의 지역적 절종 사태가 벌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농약 사용량이 많고 논이 도로·주택·발전소·골프장 건설, 광산 개발 등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가 분석한 적이 있다.

그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북한은 2018년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데 이어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경로 파트너십(EAAFP)에도 가입했다. 문덕 철새보호구와 나선 철새보호구는 람사르 습지로, 금야 철새보호구는 이동경로 파트너십 대상지로 등록돼 있다. 습지는 북한이 세계를 향해 열어놓은 몇 안 되는 창문인 셈이다.

조사단이 방문한 논 습지는 모두 철새보호구역이다. 실제 가보지 않은 논도 잘 보전돼 있을까. “직접 보지 않은 것을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논이 양서류 서식에 적합하다는 건 전국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위성사진에서 확인한 것도 그래요.” 물론 조사 지역에 산악은 빠져 있다. 그러나 다른 북한 연구자의 증언이나 자료에 비춰 볼 때 경작지나 임업 개발이 활발한 산악지의 생태적 상황은 논보다는 떨어진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논문을 보면 북한에는 한반도 고유 양서류가 18종 서식하며 육상에 사는 이끼도롱뇽과 2종의 꼬리치레도롱뇽 속도 분포할 가능성이 있다. 또 북한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관찰되는 양서류는 참개구리이고 논 등 저지대에는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두꺼비가, 산악지역에는 도롱뇽이 흔하다. 맹꽁이와 옴개구리는 흔하지는 않지만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남한에는 없는 작은두꺼비는 신의주 압록강 칠보산 평안북도 지역에 고립된 집단이 분포하며, 남한의 산지에 사는 북방산개구리는 북한에도 흔해 백두산 천지에도 산다고 북한 전문가들이 말했다. 남한의 멸종위기종인 수원청개구리는 경기도 파주까지 서해안을 따라 분포하는데 문덕에서 대규모 집단이 발견됐다. “울음소리로 확인한 문덕의 수원청개구리 집단은 비교적 건강했어요. 남한 최대 서식지와 맞먹을 규모였어요.”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도 북한의 북쪽 지방에서 서식하는데, 평안북도와 선천에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는 이유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때문으로 추정됐다.

양서류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아마엘 볼체 교수가 심야에 한국 꼬리치레도롱뇽의 생태를 관찰하던 시절의 모습이다. 사진 새와 생명의 터 제공

볼체 교수가 한국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9년 해양환경공단에 인턴 생활을 하면서부터였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가족을 따라 프랑스로 돌아와 대학을 다닌 뒤 영국을 거쳐 스위스에서 석사학위를 하면서 동물 보전에 관심을 가졌지만 진로를 정하진 못했다. 2012년 제주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총회(WCC) 때 미디어팀 책임자로 일하다 이화여대 연구원으로 취업하게 됐고 이어 서울대에서 박사과정과 이화여대 에코과학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면서 본격적인 양서류 행동생태와 보전 연구자가 됐다. 난징대 교수로 떠난 이유로 그는 “한국에서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국 등 동북아 양서류 생태에 관한 논문을 100여편 발표한 볼체 교수는 전문성을 인정받아 올해부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양서류전문가그룹 부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특히 청소년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당신이 좋아하는 걸 하세요. 양서류 생태를 연구해서 억만장자가 되진 않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행복을 누릴 겁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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