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의 탈인간] 골든타임을 놓쳐본 나라

한겨레 2021. 8. 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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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MBC)의 올림픽 중계방송 사고를 보면서 누군가 말했다.

모든 나라의 가장 뼈아픈 기억 혹은 수치가 공개되는 어떤 행진을.

전국민이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단일 사건과 연결시켜 기억하는 나라,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사활이 걸린 긴급상황에서 민첩한 조치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아직 행동이 유의미한, 놓쳤다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짧은 시간에 대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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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의 탈인간

<문화방송>(MBC)의 올림픽 중계방송 사고를 보면서 누군가 말했다. 한국 선수단을 소개하며 세월호 침몰 사진을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나는 상상해봤다. 모든 나라의 가장 뼈아픈 기억 혹은 수치가 공개되는 어떤 행진을. 미국은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 독일은 아우슈비츠, 중국은 소수민족 박해… 우리는 뭘까? 적어도 금세기 한국사만 보면 세월호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전국민이 ‘골든타임’이란 용어를 단일 사건과 연결시켜 기억하는 나라,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사활이 걸린 긴급상황에서 민첩한 조치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아직 행동이 유의미한, 놓쳤다간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짧은 시간에 대한 감각. 이 감각에 대한 공동체의 기억이 재앙의 재발을 막는다면 비극에도 한줌의 의미가 있으리라.

곧 닥친다고 경고하던 기후위기가 성큼 다가왔다. 북미, 남미,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이제 남·북반구를 안 가리고 덮치는 폭염과 폭우. 올여름을 어떻게 날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현실이 됐다. 처참한 폐허에서 각성의 계기라도 주우려 했던 이들은 그러나, 또다시 절망한다. 이 모든 걸 보고 겪고도 변화가 없음에.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는 대선 경쟁에도 기후 의제는 실종됐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텍사스 정전 사태를 겪고도 또다시 정파적 논쟁에 빠진 미국, 허난성 홍수를 보도하는 해외 언론을 ‘중국 비방’으로 모는 중국. 도대체 정신 차리는 모습은 없고, 어떤 양상만 보인다. 당하고도 모르고, 곧 죽어도 살던 대로 살겠다는 고집… 나는 지금 한 사람을 떠올리고 있다. 대장암 환자였다. 그가 평소 감자칩 이외의 식물성 음식을 멀리한 육식주의자임을 알고 나서, 나는 그의 가족을 통해 일주일이라도 채식을 해보길 권했다. 믿을 만한 전문 정보를 제공하며. 그는 거부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안타깝게 영면한 그의 운명이, 내 권고를 받아들였다고 달라졌을지는 모르지만, 무거운 의문은 남는다. 어째서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텐데….

기후위기도 대응책은 나와 있다. 화석연료 사용 종식과 에너지·식량·교통 부문의 대전환. 이걸 다 해도 장담은 못 하지만, 이것 없이 해결할 수 없음은 명백하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이 이미 십수년간 강조해온 이 기초 상식을 모르는 국가는 이제 없다. 문제는 변화를 거부하는 관성이다. 자본과 기술이 해결한다는 서사가 그 틈을 파고든다. “힘들게 바꿀 필요 없어. 수소 산업, 탄소포집 기술, 수종 교체 등에 투자하면 시장이 알아서 해결해줄 거야!” 그러나 이 달콤한 약속들은 충분한 시간을 전제한다. 수소 비행기만 해도 빨라야 15년 이상 걸린다. 전세계 상용화에 걸릴 시간을 빼고도 말이다. 그럼 기후위기를 되돌릴 골든타임은 얼마나 있나? 10년도 안 남았다. 더 나쁜 뉴스가 있다. 지난달 발표된 연구에 의하면 온실가스, 해양 산성화, 빙산 붕괴, 벌목 속도 등 주요 생태 지표의 티핑포인트(임계점) 도달 시점이 앞당겨졌다. 비유하자면 코로나19보다 전파력과 치사율이 높은 역병이 급속히 퍼져나가는데, 강력한 방역 정책과 국민의 적극적 협조(사실은 희생) 없이 아직 개발도 안 된 백신만 믿어보자는 격이다.

현 상태 유지가 좋은 기득권 세력은 재앙이 닥쳐도 피할 데가 있어 느긋한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2014년 4월16일, 소중한 존재들을 ‘함께’ 잃어본 우리는 뼈저리게 알고 있다. 비참한 결과가 완성되기 전,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미치도록 귀함을. 오늘도 정부·국회·언론은 이 진실을 등지고서 천금 같은 하루를 버리고 있다. 이 허비의 시간이 내년 3월까지 이어질 것이고, 그 후 5년간도 변화를 주도할 후보 하나 없다는 사실. 지구는 갈수록 뜨거운데 현실은 이다지도 차갑다.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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