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프리즘] 윤석열 대통령의 가능성

김태규 2021. 8. 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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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물었다.

"박근혜 대통령. 지금 대통령이 옛날 독재자의 딸이야."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대통령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고성능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킨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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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윤석열 대선 예비후보가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 당사를 방문해 입당원서를 제출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태규 ㅣ 정치팀장

“아빠, 통금이 뭐예요?”

아이가 물었다. 통. 금. 미취학 꼬꼬마는 통통 튀는 발랄한 무언가를 상상했을까.

“통행금지의 줄임말인데, 사람들이 모여봤자 불만만 터뜨리니 밤에 아예 못 만나게 한 거지.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독재자가 있었는데 그렇게 통제했어. 그런데 박정희 딸이 누군지 알아?”

“누군데요?”

“박근혜 대통령. 지금 대통령이 옛날 독재자의 딸이야.”

눈이 똥그래진 아이가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응, 그게 말이야…. 몇년 뒤 초등학생이 된 아이는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다.

9년 전 내 주변에 박근혜를 찍겠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총을 들었던 아버지와 달리 딸은 투표를 통해 합법적으로 34년 만에 청와대로 복귀했다. 현실은 명분과 당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냉정하게 말하면, 그건 내 기준이었다.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직전 검찰총장’이 대선에 출마하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명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법조팀에서 본 윤석열은 다변에 달변이었다.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 그 방에 들어가면 1시간 넘게 얘기를 나눴다. 잡학다식하고 흔히 말하는 ‘구라’가 좋아 대화하면 재미가 있었다. 교수님댁 자제로 귀하게 컸지만 9년간 고시낭인으로 살면서 일반 검사들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경험의 폭이 넓어졌을 것이라 추측했다.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인사를 하면서 손이 뒤로 가더라”는 어느 검찰 고위직 출신과는 확실히 다른 캐릭터였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그를 향해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빗발쳤지만 “보수와 중도, 진보 이탈층”을 규합해 “압도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겠다는 전략은 만만찮게 느껴졌다. 이른바 ‘진보 진영’의 위선에 불만을 느끼며 ‘탄핵 블록’에서 이탈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반문재인 세력’을 아우르겠다는 포부였기 때문이다. 현충원 방명록에 쓴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글귀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정부 지지를 철회한 사람들의 감정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분노라는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고성능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킨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말과 달랐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며 느닷없이 이념 공세를 퍼부었다. ‘중도가 아니라 나는 극우 보수요’라는 고백이었다. 월주 스님의 영결식에선 “(나눔의집 사건으로) 큰 상심을 했고 대상포진으로 이어져 결국 폐렴으로 입적했다는 얘기를 스님들에게서 들었다”며 내부고발과 이에 따른 경기도의 조사 과정을 ‘인격 학살’로 규정했다.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 등 내부고발자들이 “이해관계자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실인 것처럼 발언했다”, “경기지사가 대권후보가 아니었더라도 이와 같은 발언을 했을지 의심스럽다”고 반박한 이유다. 윤 전 총장의 이날 발언은 직장 잃을 각오를 하고 용기 냈던 사람들의 인격을 폄훼했고 조계종 나눔의집의 아픈 과거를 다시 들춰냈다.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무례였으며 분노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본인은 근거 없는 분노를 마구 표출한 셈이었다. “내가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라며 포장까지 했지만 내 눈에는 그가 정치를 하면 안 되는 근거로 보였다.

경로를 이탈한 좌충우돌 뒤 그는 국민의힘에 입당해 결국 몸에 맞는 옷을 입었다. 한쪽에선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라며 문제를 제기하지만 반대쪽에선 “뭐가 문제냐”며 열렬히 지지한다. 문재인 정부가 투사로 만들었고 그렇게 소환됐다는 항변도 유효하다. 2022년 대선은 ‘윤석열이냐 아니냐’라는 논쟁 자체로 이미 퇴행적이다. 이번 판에 ‘희망’을 말하는 건 사치일 것 같다. 그럼 2027년 대선은 좀 나아지려나.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 되는 세상’에 충격 받았던 꼬꼬마가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선거인데.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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