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칼럼] '네거티브 총량제'는 어떤가

한겨레 2021. 8. 1. 19: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준만 칼럼]뉴스는 곧 '나쁜 뉴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쁜 뉴스' 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뉴스는 공포, 증오,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건 결코 농담이 아니다. 공포, 증오, 혐오의 감정이 고조됐던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시절이 뉴스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뉴스의 '부정성 편향'은 정치인의 행동양식마저 지배한다.

강준만

포털에서 ‘네거티브’를 검색해보면 거의 대부분 정치 뉴스다. 네거티브를 자제해야 한다는 요청이나 네거티브는 자해행위라는 비판이 기사 제목으로 끊임없이 등장한다. 벌써부터 대선의 계절로 접어들었음을 말해주는 게 아닌가 싶다. 네거티브를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선거는 사실상 경쟁자들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게임’이라는 걸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지킬 수도 없고 지켜져 본 적도 없는 걸 끊임없이 요구하는 걸까? 미국 심리학자 드루 웨스턴은 그런 현실이 영 못마땅했나 보다. 그는 <감성의 정치학>이란 책에서 네거티브 선거운동에 대한 세가지 오해를 지적한다. 첫째, 선거운동이 혼탁해져 간다. 둘째, 투표율을 떨어뜨린다. 셋째, 네거티브 선거운동은 비윤리적이고, 비효율적이며, 상대방이 네거티브로 나오면 무시해야 한다.

사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 자주 하곤 하지만, 웨스턴은 “이 세가지 모두 우리가 아는 인간의 정서나 사고와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현대 미국의 선거 역사보다 더 훌륭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만 그렇겠는가. 한국의 선거 역사를 보더라도 네거티브가 기승을 부리지 않은 선거는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 캠페인이 네거티브 위주로 흐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더 강하다”는 이른바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 때문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부정적 신호에 더 빠르게 반응할수록 맹수나 적의 위험을 벗어나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오늘날에도 다를 게 없다. 위험의 성격만 달라졌을 뿐, 자신에게 언제건 닥칠 수 있는 부정적인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생존과 성공에 유리하다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랜 세월 지속돼온 이런 삶의 문법으로 인해 ‘부정성 편향’은 우리의 디엔에이(DNA)가 되고 말았다.

미디어는 그런 ‘부정성 편향’을 존재 근거로 삼는다. 미디어의 첫번째 사명은 환경 감시라는 명분을 내세워 늘 부정적인 뉴스를 내보낸다. 뉴스는 곧 ‘나쁜 뉴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쁜 뉴스’ 중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뉴스는 공포, 증오, 혐오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미국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그리워한다는 건 결코 농담이 아니다. 공포, 증오, 혐오의 감정이 고조됐던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시절이 뉴스의 전성기였기 때문이다.

뉴스의 ‘부정성 편향’은 정치인의 행동양식마저 지배한다. 국회의원 ㄱ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로 민생과 관련된 참신한 제안과 실천을 하고, 국회의원 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적으로 반대편 정당이나 개인을 공격하는 독설을 양산해낸다고 가정해보자. 언론은 누구를 더 사랑할까? 당연히 ㄴ이다. ㄴ의 독설은 거의 매일 뉴스의 형식으로 보도된다. 반면 ㄱ의 제안은 뉴스로 다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의원들은 누구를 롤 모델로 삼을까? 당연히 ㄴ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 뉴스는 대부분 누가 누구를 비판(비난)했다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언론 수용자들 역시 그런 환경에서 성장해온 탓인지 댓글을 달더라도 부정적인 댓글을 선호한다. 누가 무슨 주장을 했는지 그 내용엔 별 관심이 없다. 누구냐가 중요하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무조건 인신공격으로 나아간다. 부정적인 댓글의 대부분이 메시지보다는 메신저 공격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익과 대의를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헌신하는 사람들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우리 모두’를 위한 화합지향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이나 세력을 향한 공포, 증오, 혐오에 기반한 갈등지향적인 것일 때가 많다. 부족사회 시절에 적대적 부족에 속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혐오하는 게 자기 부족을 지키고 번영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우리 모두 그렇게 하지 말자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건 마치 네거티브 자제를 요청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언론에 제안하고 싶다. 네거티브가 잘 팔리는 현실에서 네거티브를 자제하자는 말은 하지 않으련다. 현실적인 타협책으로, ‘네거티브 총량제’는 어떤가? 네거티브 위주로 가더라도 각자 나름의 기준에 따라 총량의 상한선을 두고 좀 다른 이야기도 같이 해보자. 그러면서 그런 기사량을 조금씩 늘려나가 보자. 적어도 일부나마 정치인들이 다른 행동양식에 눈을 돌릴 수 있게끔 ‘숨 쉴 틈’이라도 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의 변화마저 안 되겠는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