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밤하늘 수놓은 스무개의 손가락

오수현 2021. 8. 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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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혜선·손열음 대관령음악제
사상 첫 두대의 피아노 합주
라벨 '라 발스' 등 3곡 무대에
피아니스트 백혜선(56)과 손열음(35)의 사상 첫 동반 연주가 펼쳐진 지난달 30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여성 피아니스트가 함께 연주하는 흔치 않은 장면을 볼 수 있다는 설레임이 공연장에 가득했다. 한자리 건너뛰기로 진행된 이날 공연에선 가용 가능한 좌석 모두 관객들이 들어찼고, 주요 방송국 카메라가 공연장 곳곳에 배치되는 등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가 또다른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는 게 현악기, 관악기와 호흡을 맞추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손열음도 연주 전 인터뷰에서 "현악기는 활을 긋는 동작에서 피아노와 사인을 주고 받으며 호흡을 맞출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는 연주할 때 손이 건반에 닿는 순간이 무척 빨라 피아노끼리 소리를 맞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 두 피아니스트가 택한 프로그램은 △코플런드의 '엘 살롱 멕시코' △라벨의 '라 발스' △버르토크의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들을 위한 소나타'. 중간에 적당히 쉬어가는 곡을 넣을 만도 한데 세 곡 모두 두 대의 피아노로 합주하기에 녹록지 않은 작품들로 채웠다. 두 피아니스트의 도전 의식이 엿보이는 선곡이었다.

첫 합주곡인 '엘 살롱 멕시코'는 미국의 작곡가 코플런드가 멕시코의 한 댄스홀을 방문해 받은 인상을 풀어낸 작품이다. 열정 가득한 이곡은 약박과 짧은 음가에 엑센트가 붙는 재즈적 스타일에다 쪼개지는 리듬이 많았는데도 두 피아니스트는 리듬의 합을 절묘하게 맞춰가는 과정을 즐기는 듯 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광이 스며있는 빈 궁정의 무도회에 대한 환상을 풀어낸 작품 '라 발스'에선 프레이징(글의 문단처럼 연주에서 하나의 선율·호흡 단위)에 대한 두 연주자 사이의 사전 논의가 상당했을 거란 짐작이 들었다. 네 개의 손을 가진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듯 프레이징에서 완전한 합일이 느껴졌다. 두 피아니스트가 서로 눈 한번 마주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쉴세없이 몰아치는데도 굉장한 일체감을 이뤄냈다.

마지막 작품인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들을 위한 소나타'에선 타악기 연주자 나오키 야스다와 김미연이 무대에 올라 팀파니, 베이스드럼, 심벌즈, 트라이앵글, 스네어드럼, 탐탐, 실로폰 등 여러 타악기를 피아노와 함께 연주했다.

통상 연주하는 옆모습이 보이도록 피아노가 배치되는 것과 달리 이번 연주에선 피아니스트가 관객을 향해 등을 돌리도록 놓였다. 이들 두 연주자의 몸이 연주 내내 격렬하게 흔들리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며, 이들이 초고난이도의 작품에 완전히 몰입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앞서 두 곡이 두 대의 피아노가 한 대의 피아노인 것처럼,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한 명의 피아니스트인 것 같은 일체감의 묘미를 선사했다면, 이 작품에선 각각의 피아노에서 서로 다른 음향과 음색이 뿜어져 나오는 분리감의 묘미를 즐길 수 있었다. 박자가 시종 불규칙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두 연주자는 피아노의 타악기적 표현을 구현해 내며 피아노의 또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다. 마치 음의 덩어리와 파편들을 계속해 관객들을 향해 던져대는 느낌이랄까.

연주를 마친 백혜선과 손열음은 관객들의 엄청난 환호 속에 서로를 향해 알쏭달쏭한 미소를 건냈다. 관객들은 알아차리지 못한 둘 사이의 아쉬움이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관객들은 두 연주자의 선물 같은 연주에 환호하며 5차례 넘게 이들을 무대로 불러냈다. 대관령의 여름밤 만큼이나 청명하면서도 상쾌한 무대였다.

[평창 =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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