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2년 넘었지만..병원에 임신중절 문의했더니

강민정 대학생 기자 입력 2021. 8. 1. 09:53 수정 2021. 8. 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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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법 제자리걸음…자꾸 늦춰지는 유산유도제 도입, 결국 블랙마켓 불법 유통 의약품에 의존

[미디어오늘 강민정 대학생 기자]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2년 이상이 흐른 지금까지 대체입법은커녕 구체적인 제도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서울 시내 산부인과 10곳에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문의해봤다. A산부인과는 최대 19주 6일까지 시술 상담이 가능하고 6주 기준 최소비용 70만 원을 안내했다. B병원의 경우 10주 이내만 시술이 가능하고 시술 가격은 내원 후 상담을 받아야 안내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C병원은 12주까지는 당일 수술이 가능하고 7주 기준 최소비용 50만 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더 높은 주 수의 경우는 개인 상담을 통해야만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외 나머지 7곳의 산부인과에서는 모두 해당 시술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제도적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병원마다 그 기준과 가격이 모두 제각각인 한편, 여성들은 “시술을 해주는 병원을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며 어려움을 토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티이미지.

현행 모자보건법상 약물에 의한 임신 중단은 허용되지 않는다.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한 이들은 '블랙마켓'을 통해 불법 유통되는 의약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실제 포털 사이트에 '미프진(경구용 임신중단 의약품)'을 검색하면 암암리에 이를 구매하고 복용한 사람들의 문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부작용에 대한 문의,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의료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생기는 불안에 대한 글이 대부분이다.

낙태죄가 폐지된 이후 관련 입법 공백이 지속되면서 '국회의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와 식약처 등의 미온적 태도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반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모낙폐)은 지난달 29일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유산유도제 '미프지미소'의 신속한 허가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낙태죄가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불합치 판결이 났지만 유산유도제가 국내에서는 여전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식약처가 유산유도제의 신속한 심사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아 “여성들의 안전한 임신 중지와 자기결정권 행사의 또 다른 제약”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프지미소는 가장 적극적인 임신 중지의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20년 가까이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왔다. 프랑스나 중국에서 1990년대부터 이 약물을 사용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에서의 의약품 접근권은 30년 넘게 지연된 셈이다.

앞서 현대약품은 지난 3월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네셔널과 국내 판권 및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했지만 식약처의 사전 검토가 4개월가량 늦춰지면서 허가 절차에 난항을 겪었다. 빠르면 올해 상반기 중으로 허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현재는 가교시험 자료 제출 검토까지 진행되면서 국내 도입이 더욱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가교시험은 외국 약물이 국내에서도 동일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검증용 임상시험의 일종이다. 하지만 중국, 베트남, 몽골, 북한처럼 동아시아 국가에서도 사용중인 약물이기 때문에 해당 절차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성명문의 요지다.

▲게티이미지.

나영 모낙폐 공동집행위원장은 “약물 자체는 이미 안전성이 확인된 바가 있다. 정말 약물의 안전한 사용을 원한다면, 온라인상 불법 임신 중지 약물 적발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70여개 국가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프지미소를 신속하게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식약처는 “해당 약품이 현재 안전성·유효성 심사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드릴 수 있는 이야기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도 “가교시험은 절차적 원칙이다.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생기는 부작용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이냐”며 신속한 도입에 보수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사무국장은 “미프지미소의 부작용에 대해 보고된 사례가 거의 없고,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영구적인 부작용은 손에 꼽는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그러면서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 자꾸만 해결되지 못하고 공전하는 문제들을 최대한 빨리 실무적으로 해결해야 할 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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