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소 건설업체 고혈만 쥐어짜나".. 경기도 공공공사 예산 삭감 논란

김노향 기자 2021. 8. 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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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역-동탄역 광역급행철도(GTX) 2공구 건설공사현장 /사진=뉴스1
경기도가 발주하는 100억원 미만 공공공사의 공사비 삭감이 3년 만에 재추진된다. 예산 절감이 목적이다. 건설공사 현장 안전사고가 잇따르고 부실시공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가운데 이 같은 공사비 삭감은 건설업계와 중앙정부의 적정 공사비 정상화 정책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공사비 삭감 대상이 대형건설업체가 아니라 100억원 미만 공사를 수주하는 지역 중견·중소업체라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0억원짜리 공사가 낙찰금액 78억원


경기도가 올 하반기부터 직접 발주하는 공사금액 100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공공사에 현행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표준품셈’보다 공사비 산정 기준이 낮은 ‘표준시장단가’를 적용할 방침이다. 경기도는 이전에도 100억원 미만 공공공사에 대한 표준시장단가 적용을 골자로 한 조례 개정을 추진했지만 ‘중소건설업체 공사가격 후려치기’라는 업계의 우려와 경기도의회의 반대로 실패했다.

이에 경기도는 행정안전부의 계약 규정을 이용 새로운 표준시장단가 방안을 마련했다.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의 공사 예정가격(발주금액)을 각각 산출 후 차액만큼 감액해 일반관리비율의 재량항목에 적용해 설계서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표준품셈 예정가격이 90억원, 표준시장단가가 86억원인 공사라면 4억원을 재량 항목으로 조정하는 것. 도는 이번 조치로 공공 공사비를 4~5% 인하해 연간 약 100억원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부터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의 공사비 산정기준(표준품셈·표준시장단가)을 개정했다. 표준시장단가는 2015년 3월 도입됐지만 2016년까지 100억~300억원 공사에 한해 한시적으로 적용이 유예됐다. 표준시장단가는 주로 대형공사에 적용돼 표준품셈 대비 예정 가격이 최대 18%가량 낮다는 게 국토부의 추산이다. 이에 비춰볼 때 이번에 경기도가 표준품셈을 축소하기로 한 것은 입찰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여권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18년 취임 직후부터 자치법규인 ‘경기도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촉진 조례’에 100억원 미만 공사 표준시장단가 제한을 삭제하는 개정안 상정을 추진했지만 그동안 경기도의회의 반대에 부딪혔다. 중소건설업체의 강제 저가 수주에 따른 폐업과 일자리 감소를 우려한 업계의 반발 때문이다. 중소전문건설업체 회원사로 구성된 대한전문건설협회에 따르면 경기도의 등록업체 수는 9221개사로 전국 4만9247개사의 18.7%를 차지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재 공공공사 평균 낙찰률은 예정가격 대비 80%대 안팎 수준이고 최근엔 이조차 못 미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공사금액을 가장 낮게 써낸 업체가 수주하는 ‘최저가 낙찰제’가 저가 수주 경쟁으로 인한 부실시공 우려를 낳아 2016년엔 ‘종합심사 낙찰제’(종심제)가 도입되기도 했다. 하지만 조달청에 따르면 제도 도입 후 2016년부터 2021년 5월까지 종심제 평균 낙찰률 역시 78.6% 수준이다. 예정가격 100억원인 공사의 실제 공사금액은 78억원을 조금 넘는 셈이다.

이렇게 발주 과정에서 공사금액이 낮아지는데 표준품셈 폐지까지 더해지면 예정가격 자체를 더 낮출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00억원 미만 공사 평균 낙찰률이 약 86.0%라고 추산하고 이는 역설적으로 공사 설계비가 14.0% 부풀려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표준품셈 대비 표준시장단가는 100억원 이상 사업의 경우 82.0%, 100억원 미만 적격심사(최저 가격을 제시한 업체를 적격심사 기준에 따라 낙찰) 시 88.0% 수준이다. 공사금액이 적을수록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격차가 커지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사업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표준시장단가가 반드시 표준품셈보다 낮은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종 별로 표준품셈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규모의 경제에 따라 공사 규모가 크면 표준시장단가가 낮아지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는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가운데 낮은 가격을 적용할 방침이다.



무조건 싼값에 공사해라?


공공공사는 도로·철도·교량 등 대규모 인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인프라 건설이 주를 이룰 뿐 아니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공임대주택 등도 해당된다. 공사비 삭감은 품질의 저하나 안전관리 문제로 이어질 것이란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경제금융연구실 책임연구원은 “LH 공공임대 아파트 품질이 나쁘다고 비판하는데 이는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영업이익률이 낮은 공공공사 특성 때문”이라며 “수익성을 따지기보단 공사비 수금이 안정적인 면에 주목해 공공공사에 의존하는 건 대부분 중소기업이다 보니 돈을 적게 주고 지어달라고 하면 싼 자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전문건설업시장은 업체가 난립하는 문제가 있어 이윤이 적은 공공공사에 참여할 능력이 없으면 폐업하는 게 이론적으론 맞을 수 있다”면서도 “일자리 문제도 연관된 만큼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이 쉬운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경실련의 공사비 거품 주장은 일부 사실일 수 있다. 실제로 하·도급업체 등이 중간에서 이윤을 가로채는 경우도 있다”며 “다만 명확한 근거 없이 무작정 공사비를 줄이면 업체는 어떻게든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갭’을 메울 수밖에 없고 이것이 쌓여 품질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토부도 경기도의 조치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이번 사태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대립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표준시장단가와 표준품셈은 대형공사와 소형공사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하고 있다”며 “공사비를 결정하고 관리하는 이유가 시설물 품질이나 이용자 안전 확보에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무조건적인 예산 줄이기가 궁극적인 목표가 돼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용어 설명] 표준품셈 vs 표준시장단가
▲표준품셈: 공사에 소요되는 자재·노무·장비비 등 1000개 이상 항목을 기준으로 정부가 정하는 공사비 산정기준. 정부가 표준품셈을 제시하면 발주기관이 이를 바탕으로 적정 공사비를 산출한다. 기획재정부 회계예규에 고시되며 통상 1년마다 조정된다. 수시로 변화하는 시장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신기술·신공법 수용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표준시장단가: 과거 수행한 같은 종류의 공사를 공종별로 입찰·계약·실제 시공가격을 조사해 만든 산정방식. 공사금액 100억원 이상에 대해 적용한다.



그래픽=김영찬 디자인 기자
정부가 당초 100억원 미만 공공공사에 표준품셈 적용을 허용한 것은 지역 중견·중소건설업체를 육성하고 적정 공사 원가를 산정한다는 취지였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공공사 대부분은 중소업체가 수행하는 100억원 미만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라장터 집계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1년 동안 공공공사 계약금액은 177조8733억원이며 이중 국내 중견·중소업체의 계약금액은 141조2386억원(79.4%)을 차지했다.

2019년과 2020년 2년 동안 공사금액별 종합공사 발주 현황을 보면 전체 59조6621억원(4만3715건) 가운데 100억원 미만 공사는 28조6548억원(4만2754건)으로 전체 공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금액 기준으론 48.0%이며 건수 기준으로는 97.8%에 달했다. 대형건설업체가 수주하는 100억원 이상 공사는 건수 기준으로 2.2%에 불과했다.

한국과 유사한 공사 예정가격(발주금액) 제도를 운영하는 일본에선 2005년 관련 법령을 개정해 예정가격의 부당한 삭감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지자체가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공공사비를 삭감하는 갑질을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건설업계 “공공공사 적자도 있어”


건설업계는 표준품셈을 적용해도 이윤이 전혀 없거나 적자 공사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공사 수행 시 발생하는 소음이나 환경문제 등에 따라 지역주민 민원 처리 비용을 시공사 공사비로 전가하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대한건설협회 조사 결과 경기도 한 어린이집 공사에서 표준품셈을 적용해 예정가격을 산출했지만 공사 도중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본사의 적극 지원에도 현장 실행률은 103% 수준으로 추정됐다. 결국 공사가 이윤은커녕 3%의 적자를 낸 것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보급으로 글로벌 경제 회복이 전망됨에 따라 원자재 비용이 급상승한 점도 부담이 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5월 첫 주 철근 거래가격은 톤당 93만원을 기록해 2008년 5월 철근 대란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90만원을 넘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건설업체가 자재 수급 문제를 겪으면서 올 3~4월 59개 현장에서 평균 20일 정도 공사가 지연됐다”며 “7월부턴 주 52시간 근무제가 5~50인 사업장으로 확대 시행돼 인건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연구위원은 “표준품셈과 표준시장단가 등이 확정된 후 올해와 같이 자재비가 급상승한 경우 원가 및 설계가격과 시공단가 사이의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계약서에 적용된 자재 가격과 시공 과정에 적용된 자재 가격에 차이가 발생해도 1년 이내 단기 공사계약에선 계약금액 조정을 하지 못해 일반관리비나 이윤을 줄일 확률이 높다”고 우려했다.



공사비만 깎지 말고 공무원 월급도 깎아라?


경실련은 부풀려진 공공공사비로 인해 국민 혈세가 업체의 부당이득으로 흘러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장성현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 간사는 “공사 설계가격의 85% 수준에 낙찰받아도 이익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공사비가 부풀려진 채 발주된 꼴”이라며 “이는 20년 전부터 논란이 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중소건설업체의 피해 우려에 대해선 “표준시장단가가 아니라도 어차피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는 기업이다. 지방 공공공사를 수행하는 업체 대부분 어느 정도 업력이 돼 이윤을 남기고 있다”며 “실제로 적자를 보고 있다면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실제로 적자라면 공사비 부족 문제가 아니라 원가관리와 관리 감독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건설업계에선 경기도가 예산을 아끼려면 중소기업 고혈을 쥐어짜지 말고 공무원의 월급을 줄여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표준품셈은 공사 규모에 관계없이 모든 공사에 적용하는 반면 표준시장단가는 대형공사에만 적용을 전제로 산정한 만큼 이는 대형마트 단가를 영세 상인에게 강요하는 꼴이라고 지적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경기도와 경실련의 논리를 적용하면 공무원 월급 20%를 깎을 테니 못 버틸 사람은 그만두라는 이치”라며 “기업이라면 공사비를 깎는다고 공사를 포기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단가를 맞춰 사업을 유지할 것이고 이런 문제가 쌓여 품질 하락이나 부실공사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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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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