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도쿄올림픽 '태권도 스타' 된 BBC 해설자

유태영 2021. 7. 3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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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방송 태권도 해설자 루탈로 무함마드가 지난 27일 영국 대표 비안카 워크던이 한국의 이다빈에게 경기 막판 역전패하자 아쉬워하며 스튜디오를 벗어나고 있다. 더선 동영상 캡처
영국은 태권도 신흥 강호로 꼽힌다. 여자 57㎏급의 제이드 존스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영국 태권도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영국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도 금·은·동메달을 각각 1개씩 챙겼다. 이번 2020 도쿄올림픽에서는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 세계랭킹 1위 존스가 첫 경기에서 충격패를 당해 물러났지만,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거머쥐었다.

그런 영국 태권도계에서 올림픽 출전선수가 아닌 해설자가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고 가디언 등 영국 현지언론이 전했다.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상으로 분루를 삼킨 루탈로 무함마드(30)가 그 주인공이다. 올림픽 태권도 남자 80㎏ 이하급에서 은메달(2016 리우)과 동메달(2012년 런던)을 목에 걸었던 그는 3연속 출전과 금메달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신 BBC 태권도 해설자로 나선 그는 풍부한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해설로 인기를 얻었다. 냉정과 열정, 유머가 교차하는 해설이 비결이었다.

무함마드가 시청자의 이목을 끈 대표적 장면은 지난 27일 한국 이다빈이 영국의 비안카 워크던을 꺾은 여자 67㎏ 초과급 준결승전 막판. 그는 벌떡 일어선 채 워크던을 열정적으로 응원하다 이다빈의 ‘버저비터 득점’으로 승부가 뒤집히자 머리를 감싸 쥐더니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 버렸다. 5년 전 리우올림픽 결승전에서 본인이 경기 종료 직전 역전패를 당한 경험이 있는 터라 아쉬움이 더 컸을 법도 하다.

당시 그는 코트디부아르의 셰이크 살라 시세에게 경기 종료 2초 전까지 6-4로 앞서다 상대 발차기에 안면을 강타당해 6-8로 무릎을 꿇었다. 믿을 수 없는 패배에 매트에 주저앉았던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눈물을 참지 못하며 “늦은 시간까지 격려해준 사람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시간이 부족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아쉬움을 곱씹은 바 있다.

무함마드는 스튜디오로 복귀한 뒤 “여기(올림픽)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비안카에는 가슴 아픈 순간”이라면서도 “그녀는 올림픽 금메달만 빼고는 스포츠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냈다”고 격려했다. 이후 트위터를 통해서는 “비안카는 영리하게 싸웠다. 마지막 순간에 운이 없어 좋은 기회를 놓쳤지만, 다시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 동메달을 확보하자. 메달을 목에 걸고 돌아올 기회가 여전히 남았다”고 응원했다.
루탈로 무함마드가 지난해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빈에게 태권도 동작 시범을 보이고 있다. 트위터 동영상 캡처
이밖에도 그는 이번에 남자 68kg 이하급에서 은메달을 딴 브래들리 신든과 함께 생활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뒷얘기를 풀어놓았고, BBC 가상 스튜디오에서 각종 태권도 동작 시범을 보이면서 “하이킥을 할 때는 바지가 찢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고 농담을 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때로는 태권도인의 철학을 놀라운 말솜씨로 풀어내기도 했다. 존스가 이란 출신 난민팀 소속 키미야 알리자데 제누린에게 패퇴해 올림픽 3연패의 희망이 물거품이 된 뒤 “두려움에 사로잡혔었다”고 털어놓은 데 대해 무함마드는 “두려움은 불과 같다. 요리하거나 집을 따뜻하게 하는 좋은 일로 쓸 수도 있지만, 통제력을 잃으면 집을 태워 먹을 수도 있다. 슬프게도 존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설했다.
루탈로 무함마드가 동메달을 땄던 2012 런던올림픽에서 경기를 치르는 장면. EPA연합뉴스
무함마드는 29일(현지시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존스의 솔직한 발언이 존경스러웠다”며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선수가 그렇게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다니, 대단히 용감했다”고 다시 한 번 경탄했다. 그는 중압감을 호소하며 일부 종목 출전을 포기한 미국의 ‘체조 여왕’ 시몬 바일스, 마찬가지 이유로 지난 5월 프랑스오픈에서 기권했던 일본의 테니스 스타 오사카 나오미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올림픽을 좋아하는 이유는 선수들의 뛰어난 퍼포먼스를 볼 수 있기 때문이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그런 놀라운 선수들 역시 인간이고 우리와 똑같이 정신 건강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나흘간 진행된 태권도 종목 해설을 하면서 그는 SNS 등을 통해 수많은 응원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5년 만에 올림픽 태권도 경기를 볼 수 있게 돼 흥분한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반응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며 “사람들이 태권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움을 주고, 내가 태권도라는 종목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은 만큼 나의 해설에 대한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은 매우 기쁜 일”이라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태권도 해설을 마친 그는 이제 3년 뒤 파리올림픽을 주시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서 태권도를 배우며 올림픽 출전의 꿈을 키웠다는 무함마드는 아직 목에 걸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리게 될 것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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