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율 90% '찾동' 자랑하지만..'세모녀 사건'은 왜 반복되나

이승환 기자,강수련 기자 2021. 7. 31.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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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극단선택 리포트]③복지 사각지대 여전
"간식·반찬 등 아예 없거나 라면만 사다놓기도"

[편집자주]"국민은 자살위험에 노출되거나 스스로 노출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도움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 자살예방법 3조는 이렇게 규정돼 있다. 그렇지만 지난해에만 1만3018명(잠정치)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숨졌다. 코로나 블루까지 겹쳤다. 국가는 어디에 있고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송파 세모녀 6주기 및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이들의 추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2.26/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강수련 기자 = 60대 노모는 실직했고 30대 두 딸은 신용불량자였다. 세 모녀는 전 재산 현금 70만원을 새하얀 봉투에 담았다. 봉투 겉면에는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고 적었다.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 살던 세 모녀는 지난 2014년 2월 숨진 채 발견됐다. 누구에게도 도움받지 못한 취약계층의 절망적 현실을 드러낸 '송파 세 모녀 사건'이다.

정부는 사건 이후 2014년 7월 '찾아가는 보건·복지 서비스'(찾아가는 보건·복지)를 시행한다. 극단선택 위험에 노출된 복지 소외계층을 발굴해 직접 찾아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의 실효성을 놓고 의문과 비판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복지 사각지대 여전

31일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옛 읍·면·동사무소) 3194곳에서 찾아가는 보건·복지 별도 팀(전담팀)을 꾸린 것으로 나타났다. 전담팀 설치 비율은 91.6%에 달한다. 지역별로는 서울·광주·대구·대전 등 4곳의 설치 비율이 '100%'다.

찾아가는 보건·복지는 애초 복지부의 사업이었지만 2017년부터 행정안전부도 참여하며 두 부처의 공동사업이 됐다. 보건·복지와 지방 자치행정을 연결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열쇳말은 '연결'이다. 세 모녀 사건의 주요 원인이 주변과의 '단절'이었던 점을 고려한 셈이다. 행정복지센터 전담팀 소속 보건·복지 담당 공무원과 건강 서비스 담당 공무원이 서비스를 수행한다.

그러나 전담팀 설치 비율만으로 사업 성패를 판단해선 곤란하다. '왜곡'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던 배달기사 김득호씨(가명·26)가 지난 5월 극단선택으로 숨졌고, 같은 달 수도권에 살던 취업준비생 김철웅(가명·35)도 스스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역시 수도권에 살던 자영업자 박광수(가명·51)는 지난해 12월 숨진 채 발견됐다.

세 사람 모두 복지 사각지대에서 혼자 살았고 생계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 효과 파악에도 '한계'

복지부 내에서도 찾아가는 보건·복지의 한계를 꼬집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방 행정복지기관의 인력과 전문성 부족은 해결해야 할 대표 과제로 꼽힌다.

찾동 현장 방문(서울시 제공).© 뉴스1

찾아가는 보건·복지 지침상 전담팀에는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 3명 이상을 배치하고 간호 등 건강 서비스 담당 공무원을 단계적으로 둬야 한다.

그러나 서울 등 수도권과 달리 지방에서는 여건이 되지 않아 '겸직 형태'로 전담팀 업무를 하는 경우가 있다.

팀 인력을 아예 꾸리지 못한 곳도 있다. 서비스 질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고 기대 이하인 곳도 적잖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방에서 인력 부족이 발견되는 건 사실"이라며 "순환보직 공무원이나 계약직 직원보다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민간 분야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의 전문 인력을 배치하려면 예산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령이나 가구, 소득 등 특정 기준에 따른 구체적인 통계가 없어 사업의 실질적인 효과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업이 이제는 성숙 단계로 진입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선도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담 건과 방문 건, 민간 연계 지원 여부를 통계화한 자료가 있으나 연령대별 통계 등 구체적 현황 자료를 만들려면 사업이 더 성숙해야 한다"며 "2017년 사업이 본격화한 후 전담팀 구성 등 '하드웨어'를 갖추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앞으로는 세밀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찾아가는 보건·복지는 취약계층 가운데서도 장애인이나 노인, 실직하거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40대 이상 중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며 "취업준비생 등 청년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잘 찾아가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고 했다.

특수청소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는 "극단선택이나 고독사 현장을 정리하다보면 정작 도움이 절실한 분들은 정부 지원에서 소외 받는구나 실감한다"며 "사전에 지원만 받았더라도 비극을 막았을 것 같은 현장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김 대표는 "1인 가구를 비롯해 생활고를 겪다가 안타까운 상황을 맞은 분들의 집안에는 간식과 반찬 등 먹을거리가 아예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라면만 사다 놓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효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지부의 극단선택 예방 사업도 미리 찾아가 지원하는 형태가 아니라 요청을 받은 후 지원하는 방식에 치중돼 있다. 현행 제도상 극단선택 위험군이라도 요청하기 전 정신건강 상담 등을 진행하기 쉽지도 않은 상황이다.

복지부의 다른 관계자는 "전화 상담이 기본이고 본인이 원하면 상담원과 논의해 방문 상담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정보 문제 때문에 정신건강 서비스를 직접 찾아가 시행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전 중앙자살예방센터장)는 "특히 1인 가구의 복지 서비스 접근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들이 지원을 필요로 하는지도 잘 파악되지 않는다"며 "한국은 보건복지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지 않아 '찾아가는 서비스'가 실질적 효과로 이어지려면 인프라(기반시설) 확대는 필수"라고 강조했다.

한편 호주에서는 '연결'에 초점을 맞춘 극단선택 예방 대책을 수립한 상태다. 지난 2019년부터 3년간 극단선택 예방지원팀에 2135만 달러(약 245억원)을 지원하며 추진 중인 뉴사우스웨일스(NSW) 보건부의 '자살률 제로' 대책이 대표적이다.

기존 보건·복지 제공기관은 물론 지역사회와 연계한 통합서비스로 자살 예방 지원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또 극단선택 고위험군뿐 아니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 등을 발굴해 직접 찾아가며 정신건강 지원을 하도록 했다. 극단선택 위험군이나 그들의 주변인과 함께 마련한 방안이라 주목받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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