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音란서생]신나게 노래하는 이의 등줄기엔 식은땀이 흘렀네

배순탁 2021. 7. 3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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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윤 작가('비장의 무비' 필자)의 팔이 낫지 않았다.

능력 부족이기 때문이다.

뭐로 보나 2주에 한 번이 내 사이즈에는 딱 좋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이 곡 '댄스 몽키(Dance Monkey)'를 통해 2019년을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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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탁의 음란서생]
"나는 행복한 광대야. 관객을 즐겁게 해줄 때 기쁨을 느끼지." 대강의 추측은 이러하겠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댄스 몽키(Dance Monkey)’로 2019년을 강타한 톤스 앤드 아이. 본명은 토니 왓슨이다. ⓒEPA

김세윤 작가(‘비장의 무비’ 필자)의 팔이 낫지 않았다. 그리하여 3주 연속 쓰게 됐는데 전혀 즐겁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능력 부족이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 번은 아무래도 숨 가쁘다. 뭐로 보나 2주에 한 번이 내 사이즈에는 딱 좋다. 다시 한번 그의 쾌유를 빈다.

항상 주장하는 게 있다. 놀라움은 몰랐던 걸 아는 데서 오지 않는다. 잘 안다고 믿었지만 기실 잘 모르고 있었다는 깨달음 속에서 온다. 그래서 준비했다. 이른바 ‘겉과 속이 다른 곡’이다.

톤스 앤드 아이 / Dance Monkey(2019)

신난다. 재미난다. 게다가 제목마저 “춤춰 몽키”라니, 이것은 인생을 무한 긍정하는 바이브임에 틀림없다. 일단 탄력 넘치는 리듬부터가 예술이다. 나 같은 몸치도 어쨌든 들썩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곡의 성취는 다시 한번 분명해진다. 독특한 목소리 톤에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멜로디도 좋다. 누가 들어도 단번에 각인될 라인을 심플하게 잘 뽑아냈다.

곡에서 몽키는 당연히 가수 본인이다. 본명은 토니 왓슨.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싱어송라이터로 이 곡 ‘댄스 몽키(Dance Monkey)’를 통해 2019년을 강타했다. 자연스레 대강의 추측은 다음처럼 될 확률이 높다. “나는 행복한 광대야. 관객을 즐겁게 해줄 때 기쁨을 느끼지.” 실상은 정반대다. 요약하면 이 곡은 아마추어 버스킹 뮤지션 시절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다. 버스킹을 하는 와중에 관객이 갑자기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짓을 하면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건가?’ 싶어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고.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저 관객을 붙잡아놓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선물해준 곡인 셈이다. 그렇게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는 때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거라고 톤스 앤드 아이(Tones and I)는 말한다.

잭슨 브라운 / The Load Out and Stay(1977)

이 곡 제목을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다. ‘Road Out’ 아니다. ‘Load Out’이다. 해석하면 ‘짐을 밖으로 뺀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낭만적인 이 곡과 짐 빼는 게 무슨 상관인지 궁금해진다. 정답은 이렇다. 여기에서의 짐은 ‘공연장에서의 짐’이다. 즉 이 곡은 잭슨 브라운이 최저임금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공연 노동자(Loadie, 로디)에게 바치는 헌사다. 이어지는 ‘Stay’는 ‘The Load Out’과는 달리 멋진 공연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마음을 담기 위해 모리스 윌리엄스의 1960년 곡을 커버한 것이다.

로디는 기본적으로 프리랜서다. 아니, 공연에 관계된 이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인 경우가 많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 중 하나가 공연계라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공연계는 지금까지 최선으로 방역하면서 공연장 내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연을 연다고 하면 “이 시국에?”라며 목소리 높이는 사람을 목격한다. 우리 제발, 분노하기 전에 거기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 사람에게 딸린 가족이 있다는 걸 명심하자. 이뿐만이 아니다. 뮤지컬과 클래식은 공연을 허가해주면서 왜 대중음악 공연은 ‘행사’라는 조롱 속에 차별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이제는 알고 싶다. 그러다가 “한류의 중심은 역시 대중음악”이라고 찬사를 보내는 건 정말이지 너무 뻔뻔한 작태 아닌가 말이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B사이드> 진행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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