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출산, 文-安성행위 그림 무혐의..사례로 본 '쥴리 벽화' 앞날

하준호 입력 2021. 7. 31. 05:01 수정 2021. 7. 31.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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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한 비방은 과거에도 적잖았다. 최근 서울 관철동 소재 중고서점 건물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인 김건희(49)씨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그려져 논란이 된 것도 일례다. 다만, 실제 그림의 작가가 법적 책임을 지고 법정에 서는 일은 드물었다. 공직선거법 등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거나 비방 대상이 정치인 등 공인인 경우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해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과 2017년 탄핵 이전에 숱한 풍자나 모욕의 소재였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비슷한 외모의 아이를 낳는 그림을 그려 전시하고 블로그에 게시한 민중화가 홍성담씨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그림뿐이었던 박근혜 풍자화, ‘무혐의’ ‘무죄’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서점 벽면에 그려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 문구가 페인트로 지워져 있다. 뉴스1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홍씨에게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불기소 처분이 나왔다. 특정 사실을 적시한 게 아니라 의견 표출에 불과하단 이유에서다. 만화가 최지룡씨가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의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을 그려 블로그에 게재한 걸 두고도 중앙선관위는 선거법 위반이라며 수사의뢰 했지만, 검찰은 같은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반면 검찰은 그해 6월 박근혜 후보를 백설공주로 묘사한 그림을, 같은 해 11월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얼굴을 합성한 그림을 서울·부산·광주 등지의 택시정류장에 부착한 팝아티스트 이하씨에 대해선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보고 이듬해 6월 불구속기소 했다. 그림의 내용보다는 특정 후보를 지지·반대하는 그림을 부착한 행위가 위법이란 이유였는데, 법원에선 무죄 판결이 나왔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추천·반대로 볼 수 없고, 대선이란 이슈와 관련해 시사성이 짙은 인물들을 예술활동의 대상으로 삼은 것일 뿐이란 취지였다.

2017년 1월 표창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회관에 전시된 박 전 대통령 풍자화는 당시 민주당 차원에서도 표 의원에게 당직 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리는 등 큰 논란이 일었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올랭피아’에 박 전 대통령의 얼굴과 최순실씨를 그려 넣은 그림이 국회에 전시되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찾아와 그림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앞서 지난 29일까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김건희씨를 비방하는 내용의 벽화엔 미확인 사실관계가 적혀 있었다. 뉴스1

당시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가 표 의원과 화가 이구영씨를 검찰에 고발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오히려 그림을 훼손한 예비역 준장 심동보 전 해군 제독 등은 검찰이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해 법원에서 벌금 1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심 전 제독은 이씨가 청구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자극적 문구는 옥외광고물법 위반 ‘유죄’
똑같이 ‘올랭피아’를 패러디했지만,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도 있다. 4·15 총선을 앞둔 지난해 1월 김현미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용섭 광주광역시장의 얼굴을 ‘올랭피아’ 등에 합성한 현수막을 광주광역시 서구의 한 건물에 사흘 동안 건 40대의 무소속 예비후보 A씨의 경우다.

다만, 이때도 그림보다는 현수막에 적힌 ‘미친 집값, 미친 분양가’ ‘XXX 너도 장관이라고! 더불어 미친!’ ‘예비후보 인간쓰레기들’ 등 자극적인 문구가 문제였다. 법원은 “다수의 주민이 자유로이 통행하는 산책로에 인접한 건물 외벽에 미풍양속을 해칠 우려가 있는 현수막을 게시해 그 죄책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풍자한 내용도 포함된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200만원과 그에 대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죄명은 옥외광고물법 위반이었다.


허위사실 문구 적시 땐 위법성 조각 안 돼

지난해 1월 13일 광주 서구 풍암동 5층 건물에 내걸린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장관 비방 현수막. 뉴스1

윤 전 총장 부인 김씨를 겨냥한 ‘쥴리 벽화’의 경우, 어떤 사안에 대한 의견 표현이라기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관계를 문구로 적는 등 예술활동 목적으로만 보기엔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정치인 본인이 아닌 정치인의 가족만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도 과거 비방·풍자화 사례와는 다른 점이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쥴리’라는 표현도 김씨가 이를 부인하는 인터뷰 기사가 나오는 등 김씨를 특정하기에 충분하고, 미확인 사실관계를 적시해 단순 풍자보단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해당 벽화 제작을 의뢰한 건물주 측이 30일 오전 뒤늦게 허위사실에 해당할 수 있는 문구를 지웠다고 하더라도 처벌 사유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날 오후엔 일부 유튜버가 남아있는 사진 등을 토대로 기존 문구를 다시 써넣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인사는 “사람을 찌르고 뒤늦게 꿰매줬다고 해서 찌른 사실이 사라지느냐”며 “문구 내용이 허위사실로 밝혀질 경우 공익 목적이라 해도 위법성 조각 사유로 인정되지 않아 기존 건물주는 물론 새롭게 문구를 적어 넣은 이들도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친고죄인 모욕과 달리, 명예훼손의 경우 피해자의 분명한 반대 의사가 있어야만 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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