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 다 죽을뻔한 개들이, '낮잠'을 편히 잡니다
30일 오후 4시. 계양산 시민보호소 단톡방엔 사진 여러 장이 올라왔다. 그 주인공은 '쥬디'였다. 녀석은 무더운 여름맞이 시원한 목욕을 마치고, 나른한지 곤히 낮잠에 빠져 있었다. 보송보송한 얼굴을 봉사자님 손에 올려놓은 채. 세상 편안한 모습에 "사랑스러워요", "쮸디 사진 더 풀어주세요"하며 다들 난리가 났다. 안온했다.
한여름 복날, 하마터면 도살장에서 끝날뻔한 귀한 삶이 이렇듯 다채롭게 빛나고 있다. 개농장이 사라진 자리에 시민보호소가 들어서며 누리는 기쁨이다. 뜬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죽어서만 나오던 개들이, 생애 처음으로 보호란 걸 받고 있다.
시민들이 행동하고 있다. 더는 개농장 철창서 울부짖는 개들을 보며 안타까워만 하지 않는다. 도살을 막고, 꺼내어 살리고, 제대로 된 밥과 물을 먹이고, 치료해 보호하고 돌본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지만 여럿이 뭉치니 해낸다.
이런 사례는 전국적으로 계속해서 늘고 있다. 인천 계양산에서, 경기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충북 증평군에서 말이다.
인천 계양산 시민보호소는, 시민 유희진씨가 계양산에서 우연히 개 짖는 소리를 들은 게 시작이었다. 걱정돼 따라간 곳엔 개들 300여 마리로 가득한 개농장이 있었다. 유씨는 이를 알렸고 시민들과 연대해 힘을 모았다.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를 본 해외 한 복지가가 자비를 부담해 개들을 그만 죽이도록 막았다. 이 과정에서 동물보호단체 케어가 개농장 측과 협상하는 걸 적극적으로 도왔다.
360여명의 시민들이 모임을 결성해 십시일반 비용을 모아 개들을 보호하고 있다. 뜬장을 철거하고, 개들을 꺼내어 펜스를 치고, 겨울에 추울까 싶어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또 심장사상충 등에 걸린 아픈 녀석들을 치료하고, 평일과 주말을 안 가리고 봉사하러 간다. 대책도 없이 내쫓겠다는 계양구청에 항의하고, 법적 대응을 통해 행정집행을 정지한 것도 다 시민들이 이룬 일이다.
유씨는 "강자에게 강하고, 약한 것에 자비심을 가진 선한 사람들이 모여 이룬 기적"이라고 했다. 또 시민 정서상 개식용 문화를 거부하는 것이며, 시민의 힘으로 이를 끝낼 때가 된 거라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계양산 시민보호소엔 젊은 봉사자들이 꽤 많다.
충북 증평군에서도, 한 시민이 40년 넘게 도살해 온 불법 개농장을 발견했다. 영하 20도 추운 겨울 날씨에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뜬장에서 살고 있던 개들이었다. 시민모임의 노력으로 구조하고, 입양을 보내고, 임시보호처와 위탁처로 옮겨 현재 임시 견사에 40여 마리의 개들이 보살핌을 받으며 살고 있다. 경기 남양주의 별내 개농장 역시 시민들 주도로, 30여 마리를 구해 새 보금자리로 옮겨 보호하고 있다.
계양산 시민보호소에 남은 개들은 약 160마리. 최근 기준으로 매달 약 2000만 원씩 비용이 든다. 심장 사상충에 걸린 개들 치료에만 앞으로 2000~3000만원씩 들 예정이다. 기존에 개농장서 제대로 된 돌봄과 치료를 받지 못한 탓이다. 11번가에서 의료비로 8000만원을 후원해줬으나 중성화와 치료를 하느라 잔액이 2600만원 밖에 안 남았다.
개들 수명이 10년 이상 되는 걸 감안하면, 정기 후원자가 1000명 이상은 필요한 상황. 그러나 현재는 정기 후원자가 4분의 1 수준인 250여명에 불과하다. 유희진씨는 "앞으로 15년 이상은 개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이 아이들을 끝까지 지키고 먹여살려야 한다는 책임감과 현실적인 무게를 느끼고 있다"며 "시민들과 함께 지켜야만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걱정했다.
충북 증평개농장 구조시민단체는 상황이 더 안 좋다. 당장 임시 견사에 있는 25마리의 개들이 갈 곳이 없어,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해도, 증평군청에선 8월 17일까지 무조건 나가라고 한단다. 시민단체는 "폭염에, 땡볕에 개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하고 있다. 봉사자도, 비용 후원 역시 여전히 부족하다.
별내동 개농장 시민구조모임인 '별에서 온 댕댕' 역시, 월세 80만원에 위탁비 100만원을 매달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정기 후원자가 7명, 통장 잔고가 20만원에 불과하단다. 별댕댕 측은 "병원비, 각종 세금 등을 혼자 감당하기 힘들다"며 "많은 분들 도움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새끼를 많이 낳느라 젖이 다 찢어진 개가 있었다. 꼬물이들은 그걸 먹겠다고 물고 늘어졌고, 살까지 다 찢어졌다. 억지로 뜬장에 넣어 수컷과 교미를 시켰고, 새끼를 낳게 했고, 그걸 다시 빼는 걸 반복했다.
시민들에게 구해진 뒤엔 '광복이'란 이름이 생겼다. 새 가족을 만나도록 돕고 싶었으나, 광복이는 목줄을 하는 것부터 거부감이 심했다. 개농장 주인이 목에 올가미를 걸어 뜬장에 집어넣고 뺐던, 나쁜 기억 때문이었다.
광복이를 위한 모금이 이뤄졌고, 오랜 시간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에서 임시 보호를 받다가, 입양까지 가게 됐다.
새 가족과 잘 지내고 있다는, 광복이 사진을 봤다. 녀석은 큰 인형을 물고 똘망똘망 귀여운 표정을 짓고, 문 손잡이에 앞발을 올려놓고 가족을 바라보는 듯 해맑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포근한 이불에서 곤히 잠든 광복이를, 보호자가 보드랍게 쓰다듬었다.
구조되기 전 광복이 사진과 비교해 봐줬으면 한다. 같은 개라는 게 믿어지는지. 다행히 죽을 날만 기다리던 광복이를 애달파하며 구한 용기 있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 덕분에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한여름 복날 사라질뻔한 개는, 이제 가족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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