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증 소년을 둘러싼 인간 세계의 지옥도

이기문 기자 2021. 7.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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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다섯 마리의 밤|채영신 지음|은행나무|276쪽|1만3500원

흰 눈썹과 머리칼, 빨간 눈동자를 가진 백색증(알비노) 열 두살 소년 세민은 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괴롭힘의 원인은 생김새가 아니라, 그런 몸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똑똑한 머리와 당당한 태도 때문이다. 세민은 엄마 혜정과 단둘이 사는데, 엄마는 과거의 끔찍했던 상처에 시달리며 수시로 술을 마신다. 혜정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던 다른 학부형 엄마는 질투와 모멸감에 점점 미쳐간다. 자신이 아들이 세민에 치여 만년 2등을 하고, 수시로 외도하는 남편이 이번엔 혜정에게 마음을 뺏겼기 때문이다. 그는 아들에게 백색증에 대한 미신과 혐오를 주입하면서 괴롭힘을 종용하고, 혜정이 감추던 상처를 기어이 끄집어내 다른 학부모에게 퍼뜨린다.

세계의 멸망을 믿는 사이비 광신도인 태권도장 사범은 남과 다르게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세민에게 구애를 한다. 그는 “세상을 구원할 선택받은 아이” 세민에게 제안을 한다. 네 소원을 짐작해 내가 이뤄준다면, 멸망과 구원을 믿겠느냐고. 그는 폭력 가해 아이 둘을 차례로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고, 어두운 욕망을 들킨 세민은 후련해하다 점차 혼란스러워한다.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장애를 향한 혐오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어설픈 구원과 위로는 얼마나 헛된 것인지 보여준다. 세민과 학급 친구들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연극을 하는데, 저마다 동물 가면을 쓰자 현실의 위계는 역전된다. 각본을 쓴 세민은 말의 탈을 쓴 친구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며 피해의식과 분노를 그대로 되갚는다. 고통이 고통을 낳는 지옥도를 바라보고 있자면 출구를 알 수 없어 아득해진다. 인간은 동물이고, 언제든 짐승이 되어 서로를 할퀼 수 있다는 씁쓸한 사실을 확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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