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29] 당신도 상처받은 거 알아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매사추세츠주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어촌 맨체스터 바이 더 시. ‘리’(케이시 애플렉)는 ‘랜디’(미셸 윌리엄스)와 가정을 꾸리고 어린 세 자녀와 함께 평범하게 살고 있다.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집에서 소소한 파티를 벌이고 술을 더 사러 나가는 길에 위층에서 자는 아이들이 추울까 봐 벽난로에 장작을 몇 개 더 넣는다. 술을 사서 돌아오는 길, 집은 화재로 전소되고 세 아이는 나오지도 못한 채 안에서 숨을 거둔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시(Manchester by the Sea∙2016)’의 이야기다.
리는 랜디와 이혼하고 보스턴으로 거처를 옮겨 건물 잡역부를 하며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아간다. 형 ‘조’(카일 챈들러)가 심장마비로 죽으며 아들 ‘패트릭’(루커스 헤지스)을 부탁하지만 슬픔의 늪에 턱밑까지 빠져 있는 리는 패트릭을 챙길 여유가 없다. 패트릭도 투병 중이던 아버지를 봐서 그런지 아버지의 시신을 보고도 덤덤하게 돌아선다. 각자의 슬픔을 짊어진 두 사람은 격한 감정을 표출하는 일도 없이 그저 세상을 향해 냉소적인 태도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슬픔을 폭발 임계점 직전까지 눌러 놓은 것일 뿐 그들의 슬픔은 누구보다 격렬하고 과격하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이런 말을 했다. “모든 이에겐 세상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슬픔이 있다. 우리가 차갑다 말하는 사람은 그저 슬픈 사람일 수도 있다(Every man has his secret sorrows which the world knows not; and often times we call a man cold when he is only sad).”
우연히 리와 마주친 랜디는 눈물을 쏟아내며 리에게 사과한다.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당신에게 못 할 말들을 했어. 당신도 상처받은 걸 아는데(I know yours is broken, too)….” 상실의 슬픔에 매몰된, 그럼에도 위로의 손을 건네는 이들. 이들에게 구원은 있을 것인지.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년 다닌 삼성 사표 내고 만든 ‘치태 제거’ 끝판왕 칫솔
- “제주 APEC 개최, 대한민국 국격 높이겠다”
- “제주, 2025 APEC 정상회의 최적지…국제회의 인프라·안전·자연 문화환경 장점”
- 필수 기능 다 넣었는데 10만원 대 로봇청소기, 60억원 판매 히트
- 아마존·올리브영 1위, 화제의 한국산 1만원 아이·썬·보습 크림
- ‘미우새’ 이상민 착용 숙면유도밴드, 8만9000원 조선닷컴 한정 특가
- 알고 보면 가장 오래 신는 신, 슬리퍼 쿠션이 발 건강에 미치는 영향
- “출산률 방치 한국, 선진국에서 개도국 전락하는 첫 사례 될 것”
- [스포츠 브리핑] 수영 김우민·황선우, 모나코 대회 1위
- [부음] 안종상 前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 별세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