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11] 몸은 기억한다

백영옥 소설가 2021. 7. 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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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를 배우면 가장 먼저 배우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하나 있다. 바로 ‘턴 아웃’이다. ‘턴 아웃’은 온몸의 근육을 몸 안이 아니라 몸 밖으로 강하게 밀어내는 행위로, 발레를 어렵게 느껴지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발레를 배우면 알게 되는 게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아름다움엔 비인간적일 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을 잊게 해주는 순간이 있다. 바로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2019년 스페인의 한 요양병원, 휠체어에 초점을 잃은 눈을 가진 앙상한 노인이 시든 식물처럼 구부정히 앉아 있다. 누군가 그녀에게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들려준다. 잠시 고개를 떨구던 그녀는 이내 음악에 반응하듯 하늘을 향해 턱을 치켜들더니 휠체어 위에서 손을 나비처럼 접었다. 빛나던 젊은 시절의 한때를 기억하듯, 그녀의 팔과 손끝은 생의 마지막 날갯짓을 하며 아름답게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로 투병해온 발레리나 마르타 곤잘레스였다.

드라마 ‘나빌레라’에서 평생 집배원으로 일했던 덕출이 발레리노를 꿈꾸었다는 건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 덕출이 발레교습소를 찾았을 때 원장에게 “먹고사느라 한 번도 해보고 싶은 걸 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칠십 넘은 노인에게 발레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세계지만, 그는 실패할 줄 알면서 도전한다. 자신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를 알게 됐을 때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수없이 연습했던 동작을 끝내 기억해 내는 덕출의 구부정한 팔과 등 앞에서 경건해졌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질 줄 알면서도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한 인간의 뒷모습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년의 삶은 투병과 간병 그 사이에 있다. 생의 마지막 우리에게 어떤 병이 닥쳐올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기억하고 싶다. 우리가 한때 빛나는 존재였다는 것, 날아오르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말이다. 비록 뇌가 기억을 못하더라도, 몸은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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