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중종의 정릉과 문정왕후의 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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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릉 중에서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왕릉이 있다.
성종과 정현왕후의 왕릉인 선릉(宣陵)과 중종의 왕릉인 정릉(靖陵)이 그것이다.
명분은 중종의 무덤이 아버지 무덤 선릉 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문정왕후 자신이 사후에 남편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2016년 태릉선수촌이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면서 문정왕후와 명종 모자는 이제 서로를 마주하게 됐지만, 중종은 여전히 강남 한복판에 홀로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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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왕으로 있던 시절 중종의 두 번째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아들 명종을 움직여 중종의 무덤을 현재의 강남구 지역으로 옮기게 했다. 명분은 중종의 무덤이 아버지 무덤 선릉 곁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문정왕후 자신이 사후에 남편과 함께 묻히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문정왕후는 봉은사를 중창하고 선릉과 정릉의 원찰(願刹)로 삼기도 했다. 중종의 무덤은 옮겨졌지만, 문정왕후는 승하 후 그 옆에 묻히지를 못했다. 정릉은 지대가 낮아 홍수 때 재실까지 물이 차서 신하들이 무덤을 쓰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결국 명종은 지금의 노원구 지역에 어머니의 무덤을 조성하고 태릉이라 했다. ‘태릉선수촌’, ‘태릉갈비’의 명칭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종은 문정왕후 때문에 한 명의 왕비를 곁에 두지 못한 채 현재 강남빌딩 숲속에 홀로 묻히게 됐다. 태릉 곁에는 사후 명종이 이곳으로 와서 어머니의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명종은 이례적으로 아버지 곁에 가지 않고 어머니 무덤 쪽에 와서 묻혔는데, 강릉이 그것이다. 그런데 1966년에 태릉과 강릉 사이에 태릉선수촌이 조성되면서 두 모자가 서로 볼 수 없게 했다. 2016년 태릉선수촌이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면서 문정왕후와 명종 모자는 이제 서로를 마주하게 됐지만, 중종은 여전히 강남 한복판에 홀로 묻혀 있다.
신병주 건국대 교수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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