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체절명 순간 ‘심장’이 달랐다… 안산 심박수 119, 상대 168

도쿄/장민석 기자 2021. 7. 30.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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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이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는 이름(山)처럼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16강전 세트스코어 4-4에서 맞이한 마지막 세트에서 10점 세 발을 연속으로 꽂았다. 단 한 발로 승부를 가리는 준결승전 슛오프에선 10점을 맞혀 9점을 쏜 상대를 제압했다.

안산이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러시아올림픽위원회의 옐레나 오시포바를 6-5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안산이 경기중에 관중석을 쳐다보고 있다. 2021.07.30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멘털갑’ ‘강철 멘털’이라 불리는 안산(20·광주여대)은 결승에서도 세트 점수 5-5로 슛오프에 돌입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두 선수의 심장이 달랐다.

슛오프에 임한 안산의 최대 분당 심박수는 119. 반면 상대인 옐레나 오시포바(ROC)는 168까지 치솟았다. 먼저 쏜 안산의 화살이 10점에 명중했고, 긴장감에 사로잡힌 오시포바는 8점으로 무너졌다.

안산은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에서 열린 양궁 여자 개인 결승전에서 오시포바를 세트스코어 6대5(28-28 30-29 27-28 27-29 29-27 10-8)로 누르고 정상에 올랐다. 3~4세트를 잇달아 내주며 벼랑 끝까지 몰렸지만, 5세트를 잡으며 기어이 슛오프로 경기를 끌고 간 뒤 10점 한 발로 승부를 끝냈다.

안산은 정확하게 쏜다

혼성 단체, 여자 단체에 이어 개인전 금메달을 따낸 안산은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첫 3관왕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하계올림픽 3관왕의 영광도 안았다. 동계올림픽에선 2006년 토리노 대회에서 쇼트트랙 안현수와 진선유가 각각 3관왕에 올랐다. 안산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나온 첫 3관왕이기도 하다.

시상식 후 믹스트존(공동 취재 구역)에 나타난 안산은 울먹이고 있었다. 활을 쏠 때만 보면 생전 울 것 같지 않은 얼굴이지만, “원래 울보다. 도쿄로 오기 직전에도 부담감에 울었다”고 했다.

그런데 사대(射臺)에만 서면 ‘강심장’이 된다. 이날 안산의 심박수가 89에서 119를 오가는 동안 상대 심박수는 심심치 않게 160을 넘겼다. 안산은 “슛오프 때는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중얼거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오히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나니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했다. 무대 체질이 따로 없다.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에서 안산이 금메달을 목에 건 안산이 시상대위에서 3관왕을 뜻하는 손가락 3개를 펴 보이고 있다. 2021.7.30. 도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안산은 광주 문산초 3학년 때 양궁부 창단 소식을 듣고 호기심에 처음 활을 잡았다. 남자 선수만 모집했는데, 담당 선생님을 졸라서 들어갔다. 수학 영재로 뽑힐 만큼 공부도 잘했다. “공식 하나만 알면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수학의 매력으로 꼽는 안산은 “덕분에 지금도 활을 쏘고 나서 과녁에 가서 점수를 가장 빨리 계산한다”며 웃었다.

광주체중 2학년 시절 중고연맹회장기 30m 개인전에서 정상에 오른 순간 안산은 양궁에 푹 빠졌다. 그는 “우승 한번 하니까 활이 잘 맞는단 느낌이 들면서 재미가 붙었다”며 “쏘면서 ‘이건 10점일 거야’라고 생각하면 실제 그렇게 되는 걸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고 했다.

광주체고에 진학해선 아시아컵과 월드컵 무대에서 입상하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안산은 광주체고 2학년 때 방송 인터뷰에서 “박지성이나 김연아 선수처럼 스포츠를 모르는 사람도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 원래는 울보예요” - ‘강철 멘털’을 자랑하던 스무 살 궁사가 눈물을 흘렸다. 30일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우승하며 한국 하계 올림픽 사상 첫 단일 대회 3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안산. 그동안 다잡았던 감정의 끈을 이제는 놓아도 좋았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는 지난 4월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3위를 기록하며 막차로 도쿄행 티켓을 따냈다. “돌이켜보면 올림픽보다 대표 선발전이 더 떨렸다. 마지막에 간당간당해서 올림픽에 못 올 뻔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안산이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재미있게 즐기면서 시합하자”다. 양궁협회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선수, 심리 전문가와 의논해 선수별 맞춤형 명상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안산의 프로그램 제목은 ‘첫 올림픽 대회를 충분히 즐기며 최선의 성과를 내도록 돕는 명상’이다.

안산은 상상력을 동원해 멘털을 유지한다. 경기 중에 다른 선수가 신경이 쓰이면 주변에 가상의 벽을 세운다. 안산에겐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가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이다. 수시로 이 말을 되뇌며 용기를 얻는다.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 안산이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 결승 러시아올림픽위원회 옐레나 오시포바와의 경기에서 류수정 감독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뉴시스

안산이 두 차례 슛오프에서 이긴 비결엔 내기 양궁도 있었다. 박채순 양궁 대표팀 총감독은 “슛오프를 대비해 훈련 중에 마지막 한 발을 놓고 내 돈을 걸고 내기를 자주 했다”며 “남자 대표팀의 김우진이 가장 많이 따 가고, 안산도 만만치 않게 가져갔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안산은 2관왕에 오른 뒤에도 들뜨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더라”고 감탄했다.

안산의 마음을 잡아준 이 중엔 ‘회장님’이 있었다. 대한양궁협회 회장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미국 출장을 마치고 도쿄로 와서 직접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30일 일본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산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있다./연합뉴스

정 회장은 장영술 양궁협회 부회장에게 개인전 당일 날 오전 문자를 해 안산에게 연락을 해도 좋은지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장 부회장이 괜찮다고 하자 직접 전화를 해 “믿고 있으니 경기를 잘 치르라”고 말했다.

안산은 “회장님의 전화가 큰 힘이 됐다.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 아시아양궁연맹 회장 자격으로 참석해 안산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안산은 시상식이 끝나고 정 회장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작년 엄마와 긴 생머리로 찰칵 - 여자 양궁 국가대표 안산(오른쪽)이 지난해 4월 엄마와 찍은 사진. 지금과 달리 머리카락이 긴 모습이 인상적이다. /안산 인스타그램

안산의 여섯 살 많은 언니 이름은 솔, 한 살 어린 남동생은 결이다. 어머니가 지어준 이름으로 삼 남매 이름을 합치면 소나무 산에 부는 바람결이 된다. 안산은 올림픽이 끝나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어머니가 끓여주신 애호박찌개가 먹고 싶다”고 말했다.

☞양궁 개인전 슛오프(연장전)

양궁 개인전 경기는 한 세트당 3발씩 최대 5세트로 진행된다. 세트를 이기면 2점, 비기면 1점을 받는데 먼저 6점을 얻으면 승리한다. 화살이 선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더 높은 쪽 점수를 준다. 5세트까지 세트 점수가 같으면 슛오프(Shoot Off·연장전)를 진행한다. 각자 화살 한 발을 쏴서 과녁 정중앙에 더 가깝게 쏜 선수가 승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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