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로빈후드
[경향신문]
온라인이 보편화한 한국의 주식거래 수수료율은 낮은 편이다. 증권사별로 다른데 최저는 0.01% 수준이다. 100만원어치 주식을 사거나 팔 때 100원뿐이다. 개인투자자(개미)는 더 싼 수수료를 찾아 증권사를 옮기기도 한다. 사고팔기를 반복하는 단타매매가 많을수록 수수료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신규 고객에게 한시적으로 ‘수수료 공짜’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있다. 증권사로서는 일단 고객을 유치하면 수수료 이외에도 주식담보대출이나 다른 증권상품 판매 등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미국의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는 영국의 의적 로빈후드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사용하기 쉬운 인터페이스와 거래 수수료 무료로 개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스탠퍼드대 출신 두 명이 2013년 창업한 이 회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금융거래를 기치로 내세웠다. 주식시장이 급락했다가 급등세로 전환한 코로나19 국면에서 ‘개미의 성지’로 불리며 호황을 맞았다. 게임스톱과 AMC 등 ‘밈 주식’(meme stock·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끄는 종목) 열풍에 편승한 젊은이가 로빈후드에 대거 몰려들었다. 고객예탁금은 2019년 192억달러(약 22조원)에서 2020년 800억달러(92조원)로 크게 늘었고, 고객계좌는 올해 3월 기준 1800만개로 1년 전에 비해 150% 급증했다.
올해 나스닥 기업공개(IPO) 최대어로 꼽혔던 로빈후드가 체면을 구겼다. 뉴욕증시에 상장한 지난 29일 공모가보다 8.4%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하락 원인에 대해 말이 많지만 ‘로빈후드 다시 보기’가 진행 중이다. 로빈후드는 수익의 70%가량을 고객 데이터 판매를 통해 얻는다. 시장조성자로 불리는 대형 헤지펀드에 고객의 주식거래 데이터를 넘기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방식의 수수료 수취가 금지돼 있다. 금융 민주화를 이루겠다는 말과 달리 헤지펀드를 위해 일한 셈이다. 일부 투자자는 의적이 아니라 쓰레기라는 비난도 내놓는다. 그런 부정적 시선이 주가를 떨어뜨린 것으로 풀이된다. 창업자 두 명은 상장으로 5조원대 이익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의적 로빈후드는 부자 돈을 훔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줬지만 증권사 로빈후드에서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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