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통련만 왜?' 박정희 때 근거 없이 만든 반국가단체론 아직 적용

김종철 2021. 7. 3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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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기획
한통련 여권발급 차별 왜?
한통련에 대한 여권 차별 안 된다는
국가인권위의 개선 권고에도 불구
지난달 22일 도쿄의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여권 발급 신청을 마친 한통련 간부들이 신청서 접수증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곽수호 고문, 손형근 의장, 양병룡 도쿄본부 대표위원, 김지영 재일한국민주여성회 회장. 한통련 제공

여권(passport)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담보하는 증서의 하나다. 헌법에 규정된 거주·이전의 자유(제14조)를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가운데는 이러한 이동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거부당하거나 제한받는 사람들이 있다. 재일동포 사회단체인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회원들이 그들이다. 한통련의 손형근(일본명 손마행) 의장은 한국 정부로부터 13년째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회원들은 일반 여권(10년 기한)이 아닌 1년이나 3년, 5년짜리 여권만 가질 수 있다.

정부의 이러한 차별적 조처에 대해 여러 차례 항의해온 한통련은 지난달 22일 주요 간부 4명을 대표로,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에 일반 여권을 발급해달라는 신청서를 냈다. 손 의장 외에 곽수호 한통련 고문, 양병룡 한통련 도쿄본부 대표, 김지영 재일한국민주여성회 회장 등 4명이다. 모두 한국 국적의 재일동포들이다. 일본 거주 교민이 여권을 신청하면 통상적으로 3주 만에 발급되지만, 이들 4명에 대해서는 한달이 훨씬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심사 중”이다.

한통련 간부들과의 면담을 취소하는 주일본 한국대사관의 팩스 통신문. 한통련 제공

간부 4명 여권 한달 넘도록 안 내줘
외교부 “관계기관과 협의 중” 답변만

청와대도 국정원도 나 몰라라

손 의장은 지난 27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에 여권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때는 아직 새 체제가 정비되지 않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기다리다가 다시 신청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되겠지라고 기대하면서 매일매일 대사관의 알림 게시판을 보고 있다. 그런데 지난 16일 게시판에 발급자 명단이 떴지만, 우리 이름은 없었다. 우리보다 신청을 늦게 한 사람들까지 모두 발급됐는데 우리 여권만 안 나오고 있어서 낙담하고 있다. 정부 안에서 인권위 결정을 받아들이자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대립하고 있어서 결론이 안 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는 지난 4월 한통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권 발급이 제한되는 것은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본질적으로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여권법과 여권법 시행령 등 관련 규정을 개선할 것을 외교부 장관에게 권고했다. 한통련 회원들에게도 일반 국민들과 같이 10년짜리 여권을 차별 없이 발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무 부처인 외교부를 비롯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등 관련 기관은 현재까지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고 있다. 외교부 쪽은 “한통련 회원 4명의 여권 발급 신청을 접수해서 현재 심사 중”이라며 “한통련 회원에게 기한이 제한된 여권을 발급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여권법과 동법 시행령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답했다. 손 의장은 기소중지자 규정(여권법), 나머지 회원은 반국가단체 소속 규정(여권법 시행령)에 따른 결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한통련 회원들에 대한 여권 발급 과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지닌 국정원 쪽은 아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정원은 <한겨레>의 질의에 “여권법 제12조(기소중지자 관련)에 따른 여권 발급 등의 거부는 외교부 소관 사항으로, 국정원은 관련 판단과 결정을 하고 있지 않음” “여권 유효기간 제한은 국가 안보침해 우려 시에 관계 행정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외교부에서 1~5년 범위 내에서 결정함”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쪽도 “외교부가 유관 부처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말했다. 도쿄 한국대사관 쪽도 몸을 사리고 있다. 대사관 쪽은 지난달 손 의장 등 한통련 인사들이 강창일 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자 처음에는 일정을 맞추려고 노력했으나, 뒤늦게 외교 일정 등을 이유로 내세워 “면담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태도를 바꿨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것은 인권위의 결정 및 의견이 나온 뒤에 한통련 회원에 대한 여권 심사가 유례없이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손형근 의장은 발급 거부, 나머지는 1~5년짜리 제한적 여권 발급’이라는 기존 공식에는 일단 제동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인권위 결정 등으로 이 문제가 이슈가 됐기에 현재 관계기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결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향적인 검토를 하는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질문에는 “고심의 내용이나 방향은 모른다”고 말했다.

30년 만에 처음 고국 땅을 밟은 곽수호 부의장(왼쪽) 등 한통련 간부들이 2003년 9월2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노무현 결단’을 이명박이 뒤집어

한통련의 여권 문제는 1977년의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간첩조작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대 사회계열 학생이었던 재일동포 김정사(66)씨는 김지하 시인의 법정투쟁기 등을 동료 유학생 친구인 유성삼씨에게 빌려줬다가 보안사(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전신)에 잡혀가서 고문 끝에 간첩으로 조작됐다. 이 과정에서 한민통(한통련의 전신)은 증거나 명확한 근거도 없이 반국가단체로 공소장에 슬며시 끼워넣어졌다. “북괴 및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의 지령에 의거 구성되고 그 자금 지원을 받아 그 목적 수행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의 간부 겸 공작지도원인 임계성의 강연을 듣고, 동인과 인사 교환하여 위 한민통의 간부인 것을 알게 되고…(후략)”라는 표현이다. 아무런 증거나 근거도 없이 한민통이 북한 계열인 총련의 지령과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는 중대한 혐의를 기정사실화했다. 검찰 공소장의 이 표현은 1심 재판부에서 그대로 인용됐으며, 대법원에서 김정사씨의 대법 유죄 판결(1978년)이 난 뒤로 한민통은 자동적으로 반국가단체가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전두환 군부세력에 의해 사형 판결을 받은 것도 반국가단체의 결성 및 수괴(한민통 초대 의장)라는 혐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민통은 박정희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민단을 비판하고 나온 사람들이 중심이 돼 1973년에 결성한 한국계 단체다. 이들은 김대중 구명운동 등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으며, 이 때문에 박정희 정권에는 눈엣가시였다.

반국가단체로 규정된 이후 한민통(1989년 한통련으로 개칭) 회원들의 고국 방문은 오랫동안 완전히 막혔다. 한통련 회원들의 입국이 처음 이뤄진 것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9월이었다. 당시 한통련 회원 29명이 해외 민주인사로 초청돼 일시적으로 입국했다. 한통련 회원들의 출입국이 자유롭게 된 것은 2004년 9월 대한민국 여권이 정식으로 발급되면서부터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통련의 명예회복 차원에서 이러한 결단을 내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의 포용적이고 대승적인 조처로, 손형근 한통련 의장은 2004년부터 5년간 14차례나 한국을 방문해 아버지 고향(경남 함안) 등을 자유롭게 오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통련 회원에 대한 각종 차별과 압박이 다시 가해졌다. 손 의장에 대해서는 제7차 범민족대회(1996년) 참가차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 등으로 새삼 국가보안법의 잠입·탈출 및 회합·통신죄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중지 결정(2011년)을 내렸다. 그 뒤 그에 대해서는 기소중지자에 대한 여권 발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한 여권법 제12조를 적용하고 있다.

곽동의 고문 등 한통련 방한단이 2004년 10일14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78년 5월1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박정희 정권 퇴진 요구 시위행진’ 중인 한민통(한통련) 회원들. <한통련 20년 운동사>

“해결 위해서는 청와대가 나서야”

한통련이 반국가단체가 되는 출발점이었던 김정사 간첩 사건은 2013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재심 법정은 간첩으로 조작된 김정사씨 개인의 억울한 누명은 말끔히 벗겨줬지만, 한통련의 성격과 실체에 대한 판단은 회피했다. 이 때문에 한통련은 독재정권이 덮어씌운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정권의 성격에 따라서는 헌법이 보장한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받는 차별을 당하고 있다.

이에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족쇄를 풀기 위한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통련의 완전한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는 곧 진실화해위원회에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한통련대책위원회 임종인(전 국회의원) 집행위원장은 “한통련의 명예회복은 노무현 정부의 여권 발급으로 사실상 이뤄졌다고 봤는데 전혀 아니었다”며 “근원적으로 반국가단체로 규정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점을 밝혀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여권은 재일동포들에게는 유일한 신분증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를 여행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개인 기본권에 관한 문제인데도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같은 기조로 한통련 여권 문제를 다루고 있어 실망스럽다”며 “관계 부처끼리 의견이 갈릴 때는 청와대가 갈래를 타줘야 한다”고 밝혔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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