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도전은 멀었다고 확신했다"..오바마 왜 오판했나

이향휘 2021. 7.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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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9일 새벽 여섯시께 백악관 전화 교환수가 난데없이 잠을 깨웠다. 로버트 깁스가 전화를 걸어왔다. 이 시간에 보좌관이 전화하다니. 심장이 철렁했다. 테러 공격이 벌어졌나? 자연재해일까? 깁스가 말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방금 몇 분 전에 발표됐습니다."

"선정 이유는요?"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지 9개월밖에 안 됐는데 노벨상이라니. 버락 오바마는 두 귀를 의심했다. 전화를 끊자 미셸이 물었다. 수상 소식을 전하자 "정말 잘됐다, 자기"라고 하더니 돌아누워 다시 잠을 청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회고록 '약속의 땅(A Promised Land)' 한국어판이 지난 28일 국내 출간됐다. 미국에선 이미 지난해 11월 출간된 책이다.

2017년 임기 8년을 마친 오바마는 퇴임 직후부터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이야기를 500쪽 안에 담을 수 있을 줄 알았다. 1년이면 다 쓸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결국 탈고하는 데 3년의 시간이 걸렸고, 회고록도 분량이 방대해 둘로 쪼개졌다. 하와이에서 보낸 유년 시절과 첫눈에 반한 미셸과의 결혼, 초기 정치 여정과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당선, 그도 깜짝 놀란 노벨평화상 수상,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까지가 1권의 내용이다. 그리스 재정위기를 둘러싼 유럽 정상과의 긴박한 외교무대, 논란의 오바마케어 등도 담겼다. 모든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다 보니 1권 분량만 900쪽이 넘는다. 2권은 아직 미국에서도 출간되지 않았다.

오바마는 전직 대통령이기에 앞서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담대한 희망'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변호사 출신인 만큼 논쟁에 강한 동시에 문학적인 묘사도 탁월하다. 백악관에서의 8년을 '1분짜리 야외 출퇴근길'이라고 규정하면서 책은 시작한다.

책 제목 '약속의 땅'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을 연상시킨다. 이 책은 오바마의 사적인 삶보다 공적인 삶에 초점을 뒀다. 재미는 덜한 대신 사료적 가치는 뛰어나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계 정치경제 무대에서 미국 대통령이 어떤 생각과 판단으로 결정을 내렸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솔직하게 썼다고 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내밀한 고백은 거의 없다. 또 자기 중심적인 회고록인 속성상 자기 변호 내용이 상당하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그는 2009년 취임하자마자 정치보다 경제에 집중했다. 제2의 대공황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실업률은 10%를 향해 가고 있었다. 7000억달러대의 경기부양책에 서명하고 불구덩이에 갇힌 월가 투자은행들을 구출했다. 하지만 월가는 적반하장의 태도였다. 심지어 막대한 공적기금이 투입된 미국 최대 보험사 AIG는 임직원에게 1억6500만달러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미국인들은 분노했다. 왜 금융위기를 촉발한 월가를 단죄하지 않는지. 1년 만에 위기는 수습됐지만 민주당 진영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경제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렸다고. 그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무릇 위기에 더 취약한 계층은 부자가 아니라 자신의 지지 기반인 일반 서민이라는 이유에서다.

오바마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계경제가 실낱같은 목숨을 간신히 부지하고 있는 터라 언제 어떻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고려해야 했다. 무역전쟁을 벌여 세계를 불황에 빠뜨리고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는 없었다."

실제 2008년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10년 그리스 재정위기로까지 이어지며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다. 오바마는 중국의 부상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중국 대표단의 처신을 보니 중국은 몇십 년 후에나 미국에 도전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다면 필시 미국의 전략적 실수 때문일 듯했다."

후진타오 당시 중국 주석에 대해선 "지루하다"고 혹평했다. "주제가 무엇이든 그는 미리 준비한 두꺼운 메모를 읽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냥 문서를 교환하고 서로 시간 날 때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고픈 유혹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자바오 당시 총리에 대해선 "위기를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미·중 무역 협상을 "시장 좌판에서 닭고기값을 흥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술회한 대목도 눈에 띈다. 중국에 보복 조치를 시사하자 원 총리가 중국이 더 구매하길 바라는 미국 제품의 목록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선 언급한 내용이 거의 없다. 다만 반기문 당시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선 "기계적 형식주의로 외교에 접근하는 그의 태도는 전임자 코피 아난의 세련된 카리스마와는 극명히 대조됐다"며 "활기는 없었지만 나는 반 총장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그는 정직하고 직설적이었으며 못 말릴 정도로 긍정적이었다"고 썼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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