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평생, 최전선에서 지키는 소아외과 전문의는 왜 사라지고 있을까

이정아 기자 2021. 7. 3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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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아외과 세부전문 분야 지원자 '0'..스트레스 많고 처우 열악, 근무조건도 계속 악화
대한외과학회는 지난 26일 외과 세부분과 전문의 시험 응시자를 집계한 결과, 소아외과 전문의 응시자는 0명이었다고 밝혔다. 이번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총 60명이었는데, 주로 유방외과(20명)와 간담췌외과(16명)에 지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에서는 의대 99학번 동기 5인방, 일명 ‘99즈’의 이야기가 율제병원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이들의 말을 통해 간간이 실제 국내 병원과 의료계의 현실이 전해진다. 이 가운데 주인공 중 한명인 안정원(유연석) 교수는 병원에서 유일한 소아외과 교수로 많은 소아 환자들을 수술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보살피는 인물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사고 있다. 하지만 안 교수가 속한 소아외과는 교수와 전임의가 거의 없어 주인공이 빠지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실제로 이런 드라마 속 소아외과의 상황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 외과의 가운데서도 소아외과에 지원하는 사례도 크게 줄었다. 이런 상황은 최근 발표된 흥미로운 통계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30일 대한외과학회에 따르면 올해 외과 세부 분과 전문의 시험 응시자를 집계한 결과 소아외과 전문의 응시자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려면 외과 전문의 중에서 세부 분과 전임의(펠로)를 2년 정도 경험하고 세부 분과 시험을 치러서 통과해야 한다. 올해 세부 분과 시험에 응시한 의사들은 60명이었는데, 대부분 유방외과(20명)와 간담췌외과(16명)에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외과는 태어나면서 기형이나 장애가 있거나 큰 사고를 당해 수술이 필요한 18세 이하 소아와 청소년에 대한 수술을 맡아왔다. 항문 폐쇄나 식도 폐쇄, 횡격막 탈장 같은 선천성 기형부터 사고로 외상을 입었거나 탈장, 종양, 장기 이식에 필요한 외과적 치료를 전문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소아외과 전문의들은 젊은 전문의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현재 활동하는 전문의들이 은퇴한 이후인 10~20년 뒤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소아 환자들이 제대로 된 수술을 받기 어려워진다고 우려하고 있다. 

소아외과의 366명 필요, 실제로는 45명 뿐 

의료계에선 이미 10년 넘게 의대 졸업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성형외과와 피부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소위 '인기과'에 쏠리고 산부인과나 흉부외과, 외과를 기피하는 현상이 문제로 제기돼 왔다. 이 가운데 소아외과는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 어린이 환자가 줄어들면서 기피현상이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소아외과 지원자는 2013년 52명이었지만 2014년 7명, 2015년 6명, 2016년 1명, 2017년 3명, 2018년 2명, 2019년 5명, 2020년 6명으로 계속 줄다가 결국 올해는 한 명도 없었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사라져도 일반 외과 전문의가 대신 수술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일반적인 시각도 있다. 하지만 소아는 성인과 다른 질환이 많고, 성장기 동안 대사과정이나 성숙도, 손상에 대한 반응도 다르기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게 의료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어린이는 내장의 크기도 작아 수술하기 어렵고 수술 후 예후 관리도 까다롭다. 

실제로 지난 5월 오채연 고려대안산병원 소아외과 교수와 오상훈 삼성서울병원 소아외과 교수 연구팀은 국내에서 소아 수술 사례는 늘고 있지만 소아외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연구 결과를 대한의학회지에 공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17년까지 국내에서는 소아외과 수술이 124% 늘었지만 이 중 약 10.25%만이 소아외과 전문의가 시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술 후 사망한 신생아 중환자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소아외과 전문의 부족 사태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연구팀이 최근 5년간 소아외과 전문의와 일반외과 전문의가 수술한 신생아 중환자의 사망률을 비교했더니 소아외과 전문의가 수술했을 경우 사망률이 3% 가량 낮았다.

연구팀은 이를 바탕으로 국내에서 신생아 중환자 수술을 모두 소화하려면 최소 63명의 소아외과 전문의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일반 소아질환에 대한 수술을 소아외과 전문의들이 도맡아 하는데 최소 366명의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소아외과 전문의는 45명뿐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늘었다고 해도 최근 지원 추세를 보면 크게 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소아외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도 알 수 있다. 15세 미만 소아 100만명당 소아외과 전문의 수를 살펴보면 한국은 7.16명인데 비해 미국은 20.5명, 영국은 30.1명, 프랑스는 19.8명, 독일은 24.1명, 이탈리아 51.8명, 일본 38.7명, 핀란드는 105.2명이나 된다. 

사명감 가지고 시작하나 고된 탓에 지속 어려워

얼핏 성인이나 어린이나 일반 외과 전문의가 수술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아는 성인과 다른 질환이 많고, 성장기 동안 대사과정이나 성숙도, 손상에 대한 반응도 다르기 때문에 전문적인 의술이 필요하다. 물론 내장의 크기 자체도 작으니 수술 과정도 힘들고 예후 관리도 까다롭다. 게티이미지뱅크

의료계는 의사들의 소아외과 기피 원인을 어린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고난도 응급 수술이 많지만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데서 찾고 있다. 처음엔 소아 환자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에 시작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 
 
국내 소아외과 전문의 1세대인 박귀원 중앙대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성인 암 환자는 수술 후 몇 년을 더 사는지가 중요하지만 아기 환자는 평생을 잘 살도록 치료해야 하다보니 책임감이 훨씬 무겁다"며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소아외과를 전공하겠다고 결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현재 외과의 다른 세부 분과는 유방외과, 위장관외과 등 각 부위별로 특화됐지만 소아외과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신경외과 수술 빼고는 모두 다 해야 하다보니 특히 힘들다"며 "소아외과를 하다가도 결국 일반 외과로 개업해 나가는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당장 소아외과 전문의에 대한 병원들의 처우와 관리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부윤정 고대안암병원 소아외과 교수팀이 2016년 발표한 '한국 소아외과 의사의 근무실태'를 보면 진료 실적을 보충하기 위해 다른 과 진료를 병행해야 하는 소아외과 전문의가 54%에 달했다. 또 소아외과 전문의 중 약 21.1%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고 혼자 매일 당직 근무를 해야 하는 사람도 42.3%나 됐다.

고생한 만큼 경제적인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소아외과의 경우 의료수가가 낮아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 진료과에 속한다. 일부 수술에 대한 의료수가는 쌍꺼풀 수술보다도 낮다고 말할 정도다. 소아외과가 지방의 중소병원에는 없고 큰 대학병원에만 있는 이유다. 여한솔 이대목동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3년차)는 "아이들을 수술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크고 수술 자체도 너무 힘든데 고생한 만큼의 보상마저 없다보니 소아외과에 지원하려는 사람이 줄어든것 같다"고 말했다.

여 전공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면 그만큼 대가도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수가를 너무 낮게 책정했다"며 "미국을 예로 들면 희귀 환자에 대한 수술의 경우 수가가 한국보다 20~30배가 높게 책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미 소아외과는 후속세대 양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소아외과 전문의로 성장할 소아외과 전임의는 4명 뿐이다. 하수현 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전임의는 "선천적으로 항문이나 횡격막이 없이 태어난 아기가 평생을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다는 보람이 있다"며 "하지만 아기의 생사를 좌우하는 수술을 자주 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게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하 전임의는 "여기에 의료수가가 낮다는 문제가 더해져 지원자가 줄면서 소아외과 의사들은 휴일도 없이 항상 대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이 힘들고 경제적 보상이 적다보니 인력이 줄고 결국 남은 인력의 업무 강도가 커지면서 다시 지원을 꺼리게 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미 피해는 어린 환자들에게 돌아갈 것으로 우려된다. 위급한 상황에 닥쳐도 소아외과 의사에게 전문적인 수술받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박귀원 교수는 "현재 추세라면 수 년 뒤에는 소아외과 수술을 해외에 나가서 받거나 해외에서 의사를 데려오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의사들에게 마냥 사명감만 가지고 소아외과에 지원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의대를 추가로 설립하고 의대 정원을 늘려 문제를 해결하자는 이야기도 있지만 의료 현장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추가로 늘어난 의대 졸업생들 역시 소아외과를 기피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료계는 국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터무니 없이 낮은 외과 의료에 대한 수가를 다시 합리적인 수준으로 정상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성철 대한소아외과학회장(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교수)은 "단순히 의사 전체 공급을 늘려서 몇몇 진료과를 기피하는 현상을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병원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논하지 않고도 충분히 소아외과 의사를 뽑고, 외상외과처럼 소아 응급환자를 언제든지 치료할 수 있도록 인력과 시설을 구축하도록 국가가 지원하고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상외과의 경우 국가 지원 외상센터가 15곳 운영되고 있고, 이곳에서는 중증외상환자의 긴급 수술이 이뤄지도록 인력과 시설이 상시 대기 중이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외상센터를 17곳으로 확대하고 응급환자를 실어나르는 '닥터헬기'도 기존 7개에서 9대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소아외과뿐 아니라 흉부외과나 산부인과, 소아과 등 비슷한 문제에 직면한 진료과들이 여럿 있다"며 "몇몇 인기 진료과에 의사들이 몰리는 현상을 해결하려면 국가가 나서 현실적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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