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코 인사이드] 개인 기술이 뛰어났던 홍사붕, 개인 기술을 강조하는 지도자가 되다

손동환 2021. 7. 30.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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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6월호에 게재됐습니다.(바스켓코리아 웹진 구매 링크)

1990년대 한국 농구는 기라성 같은 선수를 보유했다. 허재(전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와 이상민(현 서울 삼성 감독), 문경은(현 서울 SK 기술자문)과 전희철(현 서울 SK 감독) 등 기아자동차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의 선수들이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중앙대학교 역시 뛰어난 선수들을 배출했다. 김승기(안양 KGC인삼공사 감독)와 김영만(전 창원 LG 코치) 등이 대표적이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또 한 명 있다. 현재 안양 벌말초등학교 농구부(이하 벌말초 농구부) 코치인 홍사붕이다.
홍사붕 코치는 현역 시절 기술과 안정감을 동시에 갖춘 가드였다. 프로 선수 생활 중 우승 한 번 못했다는 후회를 남겼지만, 은퇴 후에는 후회를 메우고도 남을 보람찬 일을 하고 있다. 한국 농구의 젖줄인 초등학생 선수들을 15년 넘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벌말초 농구부에만 15년을 있었다. 15년의 세월은 지도 철학을 다졌고, 벌말초 농구부의 팀 컬러는 확고해졌다. 그리고 벌말초 출신 선수들은 ‘개인기가 좋다’는 말을 듣게 됐다. 이는 홍사붕 코치가 만들어낸 성과였다.
(본 인터뷰는 2021년 5월 18일 오후 2시에 진행됐다)

선수 홍사붕은?
“개인적인 능력이 출중한 선수였다. 개인 기술이 너무 좋았다. 가드진을 함께 맡으면서,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중앙대 농구도 재미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홍사붕과 학창시절을 함께 했던 김승기 KGC인삼공사의 말이다.
개인 능력이 출중했다고 해서, 화려한 기술만 구사했던 건 아니다. 안정감을 기반으로 하되, 필요할 때 화려한 기술을 섞어서 활용했다. 이는 중앙대 시절부터 선수 홍사붕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었다.
그러나 선수 홍사붕에게는 못 이룬 꿈이 있다. 정규리그 286경기에서 평균 21분 16초 동안 7.8점 2.3어시스트 2.1리바운드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지만, 프로 선수로서 우승 한 번 못한 것. 우승 반지를 얻지 못했다는 회한 속에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선수 홍사붕’하면, 중앙대 그리고 SBS 시절을 많이 떠올립니다.
학창시절도 그렇고, 실업에서 프로농구로 전환되기 직전에도 재미있게 농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농구가 가장 인기가 많을 때 농구를 했습니다. 농구 선수로서 대우를 많이 받았고, 좋은 대우 속에 농구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선수 홍사붕으로서의 강점과 단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송도중학교와 송도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고(故) 전규삼 선생님 덕분에, 개인 기술 위주로 농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개인 기량만큼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터프한 플레이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거였을까요?
여러 경기들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경기(2006.03.26. vs 서울 SK : 안양 KT&G 소속으로 13분 33초 출전에 8점 2스틸을 기록했다)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여러 팀을 돌다가 첫 프로 연고지였던 안양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거든요.(홍사붕은 1997~1998 시즌부 터 안양 SBS 소속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고, 2004~2005 시즌부터 다시 안양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있었어요.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프로에서 오랜 기간 뛴 건 아니었지만, 우승 한 번 못하고 은퇴한 게 너무 아쉬웠습니다. 또, 개인적으로는 은퇴 후에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왜 더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을 품었어요. 동시에, ‘내가 더 열심히 했다면 더 좋은 경기력을 보여드렸을 건데...’라는 생각을 했죠.

우연히 찾아온 인연
은퇴를 하는 프로 선수 대부분은 지도자를 꿈꾼다. 홍사붕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꼭 프로 무대에서 감독이나 코치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더 넓은 시야로 농구를 접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으로 떠났다. 2년 동안 선진 농구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1년도 지나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소중한 인연이 홍사붕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은퇴를 결심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 계속 프로 무대를 노크하고 있었습니다. 선배 선수들이 은퇴를 해야,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얻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스스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단장님께서 ‘미국에서 공부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습니다. 2년 동안 미국 대학 팀과 계약을 시켜주고, 해당 기간 동안 비용을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에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저는 사무국 그리고 가족들과 상의했습니다. 상의 끝에 은퇴를 했고, 그 해에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전에 은퇴한 선수들은 대부분 미국 서부 쪽으로 지도자 연수를 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미국 동부 지역으로 갔습니다.(미국 동부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이는 본인이 처음일 거라고 덧붙였다)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호프스트라 대학교(Hofstra University)에서 스카우트 코치 자격을 얻었죠.
학교 농구부 선수들이 훈련할 때, 저는 감독님이나 코치님들의 훈련 지도를 참관할 수 있었습니다. 지도하는 걸 돕기도 했고요. NCAA 시즌 때 홈 경기가 열리면, 벤치에도 앉을 수 있었습니다. 원정 경기도 가끔 따라갔고요. 배운 것도 많았지만, 선진국의 농구를 경험한 것 자체가 저에게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부터 안양 벌말초등학교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호프스트라 대학교와 계약 기간이 1년 넘게 남아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KT&G 사무국(현 안양 KGC인삼공사 사무국)과 유도훈 감독님께서 ‘안양에 있는 벌말초등학교의 코치 자리로 가면 어떻겠냐?’고 하셨습니다. 합의 끝에 1년만 있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됐고요. 그런데 애들이랑 있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웃음)
2006년까지 프로 선수 생활을 했고, 은퇴 후에는 미국 대학농구를 체험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곧바로 초등학생을 가르쳤습니다.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제일 어려운 건 선수 수급이었습니다. 그 때 선수가 3명밖에 없었거든요. 겨우 5명을 만들어서 첫 대회를 나가긴 했는데, 말도 안 되게 졌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죠.
첫 2년 동안은 선수를 모으는데 집중했습니다. 모은 선수들을 가르치기도 했고요. 그 기간을 거쳤더니, 선수들의 기량이 어느 정도 올라오더라고요.
어려움이 많은 첫 2년이었습니다. 초창기에 가르쳤던 제자들이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제가 벌말초에 처음 왔을 때, 6학년 선수가 최성원(서울 SK)이었습니다. 그 후에 이용우(원주 DB)가 입학했죠. 그 선수들도 기억에 남지만, 저와 함께 했던 모든 선수들이 다 기억에 남습니다.

확고한 지도 철학
벌말초 농구부는 홍사붕 코치의 지도 속에 ‘성적’과 ‘기본기’를 모두 갖춘 팀으로 성장했다. 2018년에는 소년체전 동메달과 전국 종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차지했고, 2019년에는 소년체전 은메달과 주말리그 전국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외에도 여러 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
‘성적’이 좋은 건 사실이지만, 홍사붕 코치가 가장 강조하는 건 ‘기본기’였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또한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15년의 세월 동안 변치 않는 요소였다. 홍사붕 코치만의 확고한 지도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선수를 지도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요소는 어떤 건가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중고등학교 때 전규삼 선생님한테 기본기와 개인기를 많이 배웠습니다. 전규삼 선생님께서는 항상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때는 이기는 게 소용이 없다. 성인 선수가 됐을 때 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게 어릴 때는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힘든 훈련을 해도,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주셨습니다. 훈련 하나를 해도 맹목적으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저희 선수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그런 철학을 확고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 당장 이기는 농구보다, 미래를 위해 선수들의 기본기와 개인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 우리 선수들이 농구를 계속 즐길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드리블과 볼 핸들링을 중점적으로 가르쳤습니다. 또, 농구가 손으로 하는 운동이지만, 스텝도 많이 알려줬습니다. 선수들이 그렇게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익히다 보니, 2011년 정도부터는 ‘벌말초 선수들은 개인 기술이 좋다’는 평을 들었던 것 같아요.
또, 예전처럼 운동만 해서는 안 됩니다. 공부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게 나라의 방침이고, 저 역시 그런 취지에 동감합니다. 학생 선수는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인성도 갖춰야 합니다.
어릴 때 운동을 잘하고 못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성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특히, 단체 생활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그걸 배운 아이들은 생활하는 패턴과 자신감부터 확실히 다릅니다. 선수들의 부모님도 그런 점을 좋아하시더라고요.
말씀하신 대로, 초등학생 선수들은 기초를 잘 다져야 합니다. 그러나 팀의 성적이라는 요소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본기’와 ‘성적’ 사이에서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이기는 농구를 위해 지역방어를 사용하는 팀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수들에게 대인방어만 가르쳤습니다. 제가 벌말초로 온 이후, 우리 선수들은 지역방어를 한 번도 서지 않았어요.
대인방어를 알아야 농구의 기본적인 틀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농구를 파악하는 시간이 더 빨라집니다. 지금은 느리게 보여도, 나중에는 빠르게 농구를 알 수 있죠. 그 점만큼은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제가 선수들에게 지역방어를 주문하면, 선수 개인의 수비력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코치가 지역방어를 서라고 하면, 선수들은 자기 편한대로 움직이거든요.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요.
상대 팀이 지역방어를 선다고 해서, 저는 우리 선수들에게 지역방어 공략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패턴을 가르치지도 않았고요. 너무 일찍부터 틀에 박힌 농구를 가르치면, 선수들의 개인 기술이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 스스로 하는 농구를 주문합니다. 그래야 선수들이 창의적으로 농구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모든 운동의 대세는 스피드입니다. 상대 팀이 수비를 정돈하기 전에, 선수들에게 빨리 가서 공격해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실수해도 좋으니, 5대5가 되기 전에 공격하라고 말이죠. 또, 찬스가 나면 과감하게 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코치님께서 기본기 위주로 선수들을 가르치지만, 벌말초 농구부는 기본기와 성적을 모두 얻는 느낌입니다.
저희 팀의 높이는 늘 낮았습니다. 성적이 좋았을 때도 그랬고요. 그렇지만 저는 선수들에게 기본을 이해시키려고 했습니다. 수비를 예로 든다면, 저는 선수들에게 상대 진영부터 1대1 수비를 하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수비에도 눈을 떴다고 생각해요. 저 스스로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고 선수들도 그 점을 잘 이행하다 보니. 저희 학교가 좋은 성적을 냈던 것 같습니다.
또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적극성입니다. 훈련이나 실전 때 적극성을 가져야,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해야 얻는 게 더 많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선수를 혼냈습니다. 그런 걸 선수들한테 주입시키다 보니, 선수들 또한 욕심과 적극성을 얻은 것 같아요. 그 점 또한 선수들의 발전과 좋은 팀 성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벌말초 농구부는 코치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코치 임명 후 처음에는 ‘내가 무슨 초등학교 코치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한국 농구의 미래를 키운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어릴 때 잘 해야 커서도 잘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 아마추어 지도자들이 한 학교에 10년 넘게 있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코치님께서는 벌말초 농구부에만 15년을 있었습니다.
벌말초 농구부를 맡는 동안, 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 등에서 코치 제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벌말초 선수들과 있으면서, 어린 선수들만의 진실된 모습에 매료됐습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어린 선수들을 보면 그런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또, 어린 선수들과 함께 하다 보니, 제가 한층 젊어진다는 느낌도 받았고요.(웃음)
“아이들이 즐겁게 농구할 수 있도록...”
앞서 이야기했듯, 초등학생 선수들은 한국 농구의 미래다. 이 선수들이 발전해야, 한국 농구도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홍사붕 코치는 15년 동안 한국 농구의 미래와 함께 하고 있다. 초등학생 선수가 한국 농구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갖고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또, 홍사붕 코치는 한국 농구의 르네상스를 경험했다. 한국 농구의 화려했던 시절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어린 선수들을 잘 키우고,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만들고 싶었다. 선수 시절 얻은 인기와 선수 시절 누린 혜택을 어린 선수들에게 전해주고픈 마음이 커보였다.

선수 시절을 포함하면, 안양에만 20년 넘게 계셨습니다. ‘안양’이라는 곳이 주는 의미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실업 시절부터 안양에서 지냈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후 프로에 뛰어들었을 때도, 저는 안양이라는 연고지와 인연을 쌓았습니다.
선수 생활 마지막을 안양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안양에 있는 벌말초등학교에만 15년을 있었습니다. 안양이 ‘제2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양 KGC인삼공사가 2020~2021 시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역시 큰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데요.
KGC인삼공사는 이번 시즌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안양실내체육관은 제가 선수 시절 가장 많이 뛰었던 곳이었죠. 기분이 조금 남달랐습니다.
안양 시민들이나 안양에 계신 젋은 분들께서 농구에 더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KGC인삼공사의 우승은 저에게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농구하겠다는 어린 친구들이 많지 않은데, 농구를 하려는 어린 친구들이 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리고 KGC인삼공사의 김승기 감독은 저와 중앙대 동기입니다. 동기의 우승에 기분이 좋았고,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보냈습니다. 여러모로, KGC인삼공사의 이번 우승은 저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많은 은퇴 선수들이 지도자 생활을 원합니다. 은퇴 선수들이 좋은 지도자로 거듭나기 위해 어떤 걸 준비해야 할까요?
요즘 들어, 은퇴한 선수들이 곧바로 아마추어 지도자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은퇴 후 곧바로 지도자가 된 일부 코치님들이 프로 선수들이 했던 농구를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속으로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지도 철학은 코치님마다 다릅니다. 각자의 지도 철학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해당 코치에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고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초중고 선수들은 즐겁고 재미있게 농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기량이 늘거든요. 어린 선수들은 농구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성적에 연연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은 분명 아쉽습니다.
하지만 지도자들의 생각이나 철학, 그리고 주변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성적이 안 나면 학교나 교육청에서 그만두라는 지시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이제 그런 게 없어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코치님들께서 기본기나 개인기 위주로 선수들을 가르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이 더 좋은 방향으로 조성됐으면 합니다.
현역 지도자와 현역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습니다.
농구는 199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습니다. 하지만 농구 인기는 현재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농구가 예전의 인기를 되찾을 수 있게, 후배들께서 그런 점을 더 신경써줬으면 합니다. 그렇게 해야, 어린 친구들이 농구를 더 재미있게 접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 농구 인기가 늘어난다면, 어린 친구들이 농구를 더 많이 할 거라고 봅니다.
물론, 지금 계시는 프로 감독님들과 코치님들, 선수들 모두 많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관중들도 즐길 수 있는 농구를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농구 인기를 회복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프로 농구 구성원로서의 자부심을 갖는 것 같아요. 그 점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홍사붕 코치님을 추억으로 삼는 팬들한테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농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가끔 알아보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은퇴한 지 너무 오래 됐습니다. 잊혀진 인물이기도 하고요.(웃음) 그런 저를 기억해주시는 분들한테 감사의 말씀을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한국 농구 발전을 위해 한 발 더 뛰겠습니다. 어린 선수들을 더 잘 가르쳐서, 어린 선수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한국 농구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지도 철학을 더 확고히 다지고 지도 방법을 더 연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농구를 사랑해달라는 말씀을 팬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사진 = KBL 제공, 손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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